11월은 왠지 쓸쓸하다. 이때쯤이면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조차 밟히고 채여 볼품없어지게 마련이다. 가을인지 겨울인지도 모른 채 옷을 껴입어보지만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기만 할뿐. 이럴 땐 여행을 떠나는 게 최고 보약이다. 하지만 어디로? 날씨 탓에 선뜻 집을 나서기조차 망설여지는데….
저물어 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나들이로는 일몰여행이 제격이다. 여행객들의 넋을 빼놓을 만큼 저녁놀이 아름답다는 영천 보현산천문대로 떠나보자. 보현산천문대는 경북 영천 북쪽의 보현산(해발 1,124m)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지역 천문대다.
별다른 허가없이 승용차로 오를 수 있다.천체를 관측하는 1.8m 광학 망원경과 태양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태양 플레어 망원경을 운영하고 있다.
꼬불꼬불. 천문대는 위험하지만 않으면 꽤나 낭만이 있을 법한 9.3㎞산길을 자동차로 올라야한다. 운전하는 사람이야 온 신경을 집중해야하겠지만 옆자리에 앉았다면 산길 자체가 볼거리다.
하지만 단풍은 고사하고 나뭇잎조차 다 떨궈내버려 완전한 겨울풍경이다. 쉬엄쉬엄 한적한 길을 올라 천문대 방문객센터 앞에 이르면 탁 트인 시야가 마음까지 넉넉하게 한다.
팔공산과 그 일대의 산자락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산이 많음을실감할 수 있다. 날이 좋으면 망원경으로는 포항 앞바다까지 보인다. 일몰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벌써 이 풍경만으로도 한폭 동양화다.
산 아래가 늦가을이라면 이곳은 겨울. 서둘러 두꺼운 외투를 다시 껴입어야 할만큼 바람이 제법 차다. 천문대까지 애써 올라왔는데 일몰만 보고 내려갈 수는 없다.
방문객센터 천문전시관은 휴일에도 문을 연다(월요일 휴관). 천체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고 간단한기념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전시관은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쉬어가라는 의미로 꾸며놓은 곳입니다.
1.8m망원경으로 찍은 천체사진이 볼만합니다".1.8m망원경 팀장 전영범씨는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들러볼 것을 권한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5시.
시야가 막힘이 없는 1.8m 망원경동 앞이 일몰감상의 명당자리다. 오후 5시가 넘자 서쪽 하늘이 조금씩 달라진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꼭대기서 보는 일몰은 바다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다.
바다에서의 낙조가 조용하고 가라앉는 분위기라면 이곳에서 보는 일몰은 화려하다. 그 넓은 산악지대가 온통 붉게 변한다. 그러면 이내 하늘도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마음까지도 활활 타오른다.
해는 산에 조금 걸쳐질 만큼 넘어가고 나서야 눈부시던 빛의 힘을 뺀다. 그리고 아쉬움 속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붉은 잔영은 그 이후에도 한참동안 남는다. 그제서야 매서운 추위를 느낀다. 산너머 떨어지는 불덩이를 잡으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이 얼얼하다.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간간이 차들이 올라오는걸 보면 이곳의 일몰에 맛을 들인 마니아들도 적지않을 듯 싶다. "전에는 자주 왔었는데 결혼하고는 처음이잖아". "아냐, 몇 년 전에도 왔었잖아".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는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차안에서 곤히 자고 있을 아이를 걱정하면서도 이미 경치에 푹 빠져버렸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들은 해가 넘어가고 난 풍경이 더 좋다며 애써 위안을 삼는다.
그 말에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쳐다본다. 불그스름했던 겨울산자락이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 가는 중이다. 오후 5시15분 정도가 해지는 시간으로 네시쯤 도착하면 천문전시관을 둘러보고 느긋한 마음으로 일몰을 즐길 수 있다. 높은 산꼭대기라 겨울 기온을 보이기 때문에 두툼한 겉옷을 가져가야 한다. 보현산천문대(054-330-1000).
경부고속도로 영천IC~영천시내~청송방면 35번국도~화남면~화북면 자천리~자천리서 2㎞가면 옥계리~삼거리서 우회전~정각리삼거리(천문대 진입로 좌회전)~정각리에서천문대까지 9.3㎞ 산길(아스팔트·시멘트 포장길).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맛집=보현산천문대 근처에 있는 자양면은 영천댐을 끼고 있다. 자양의 맛은 댐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붕어회. 자양면사무소 맞은편의 자양식당은 22년째한결같은 붕어회맛으로 유명하다. 댐에서 잡아올린 붕어를 쓰는데 큰놈은 탕이나 찜으로도 낸다.
붕어는 껍질이 세서 작은놈을 횟감으로 사용한다. 붕어를 회로먹는데 찜찜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맡고 있는 주인 아줌마 송인숙(49)씨가 직접 먹어보이기도 한다.
오돌오돌 씹는 맛이 일품이다. 과메기처럼 김에 싸먹는 붕어맛도 좋지만 이 집의 매력은 15가지 종류의 야채와 초장. 비닐하우스 5개동에서 직접 길러내는 싱싱한 야채를 내놓는데 사람에따라선 회보다 더 즐기기도 한다. 요즘은 미나리와 쌈배추가 제일 잘 나간다.
먹다 남은 야채를 싸줄 만큼 인심도 넉넉하다. 붕어회 2만원(2명), 3만원(3, 4명).회를 못먹는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 붕어탕과 메기매운탕도 맛있다. 탕은 1만5천원, 2만원.
천문대에서 내려와 정각삼거리서 좌회전, 8~9㎞를 달리면 충효리에서 69번 도로와 마주친다. 좌측은 죽장, 우측은 자양·영천 쪽. 왼쪽에 영천댐 호수를 끼고 달리다보면 자양면사무소와 파출소가 나오고 그 맞은편이 자양식당이다. 054)336-9014.
박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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