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의 인력난은 대도시보다 중소도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중소기업보다 영세 개인기업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난다. 실직자가 넘쳐나는 한켠에 일손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는 인력수급의 왜곡상은 포항, 구미 등 공단도시에서는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6개월이 넘도록 매달 채용공고를 내도 생산직 지원자는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 힘들게 뽑아놔도 힘들다며 금새 사표를 내기 때문에 항상 10~20% 정도 인력이 부족합니다". 겨우 생활정보지를 통해 뽑아놓은 신입 직원이 입사후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한마디 말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다. 애가 탄 회사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보면 "힘들어 못다니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LCD 액정유리를 생산해 삼성코닝에 공급하는 구미 유아이디사는 인력난으로 현재 전체 80대의 연마기 중 60여대 정도만 가동해야 할 만큼 사람이 모자라다. 탁남수(39) 총무과장은 "인력이 없어 어렵게 장만한 수억원짜리 기계를 그냥 세워 놓아야 할 형편"이라며 "주문량이 많아도 걱정"이라며 한숨지었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방진복을 생산하는 (주)퓨리텍 노범균(32) 총무과장은 "업무의 특성상 30대 부녀자들을 선호하는데 최근 들어 벌이가 좋은 서비스업종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일할 사람은 아예 구경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력난에 대해 이종호 포항지방노동사무소장은 "구직자들이 실속은 따지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포항 삼정P&A 장춘식(42) 팀장은 "전공이나 적성은 무시한 채 너나없이 작업복보다는 넥타이 매고 근무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이른바 '간판'을 따지는 속성이 깨지지 않는 한 생산직 인력난은 해소될 수 없다"고 말했다.
채용시장의 속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노동부 구인창구다. 지난달 24일 포항지방노동사무소가 주최한 채용박람회에 참가한 115개사중 구직자들에게 최고 인기를 끈 업체는 성우오토모티브와 동일산업 등 2개사. 이유는 이들이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반면 임금·근로여건에서 훨씬 좋은 취업조건을 내건 영세기업들의 부스는 한산하기만 했다.
기계전공의 모대학 4학년 박종민(25)씨는 "취업후 명함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기업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5일 근무제 확산도 중소·영세기업의 인력난을 부추긴다. 4개월간 계속 생산직 여사원 신규채용 공고를 낸 ㅇ사의 이모(52) 이사는 "구직자들의 첫 질문이 주5일제냐, 격주 토요휴무제냐 하는 것인데 둘다 아니라면 바로 전화를 끊는다"며 "근로시간 단축이 어려운 영세업체들로선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박재호(51) 이사는 "대기업의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는 내년 하반기쯤에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인력대란이 우려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근로조건 격차가 심화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그나마 인력난 해소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2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구미 모섬유업체 관계자는 "내년 3월 정부가 이들 외국인 근로자들을 강제 출국시킬 경우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넘어서 도산 지경에 이를 것"이라며 "정부는 인력수급 사정을 전면 재검토해 산업현장의 엄청난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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