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계 정당 고맙다 반미감정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 종교에 기반을 둔 정당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이슬람계 정당은 전부터 경제, 사회문제에서 세속정당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쌓으면서 꾸준히 지지기반을 넓혀왔다.

그러나 최근 외신보도에 따르면 자유선거가 실시되는 파키스탄, 바레인, 모로코, 터키 등지에서는 미국의 대 이슬람권 정책에 반발, 이슬람교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무슬림의 염원이 이슬람계 정당의 인기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에서는 18일 이슬람계 정의발전당(AKP)의 2인자 압둘라 굴 의원이 신임 총리로 임명돼 새정부를 출범시켰다. 정의발전당은 지난 3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총 550 의석 중 개헌안 단독통과선에 가까운 363석을 획득, 집권당이 됐다.

그동안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연립정당 내각을 구성해 온 터키에서 단독내각이 출범한 것은 1983년 이래 19년만의 일이며, 이슬람계 정당이 집권한 것은 국가수립 이후 처음이다.

정의발전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레셉 타입 에르도간(48) 당수는 지난 80년 군부 쿠데타 때 이스탄불 시장직에서 밀려난 후 군부에 의해 소외된 이슬람계를 옹호하는 강성 지도자로 정치입지를 다진 반골 정치인.

그는 한 집회에서 이슬람교도를 선동하는 발언을 한 죄로 4개월을 복역한 전력 때문에 공직임명이 금지된 후 친서방 온건주의자로 변신했으나, 군부 등 기득권층에서는 '교활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 파키스탄과 바레인에서도 지난달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의 의석수가 대폭 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총392석 중 78석을 차지했고, 바레인에서는 새로 선출된 의석의 절반 가까이를 이슬람 정당이 차지했다.

시아파 회교도가 지배적인 이 나라에서는 30년만에 처음 실시된 총선에서 이슬람계 정당 소속의원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시아파 조직이 개헌을 요구하며 투표를 거부하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졌다.

모로코에서는 지난 9월 선거에서 이슬람계 정당의 의석수가 14석에서 42석으로 늘었다. 터키 정의발전당의 압승은 집권당의 경제실정에 실망한 터키 국민의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에제비트 전 터키 총리는 90년대 초반에 의욕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했으나 보수파의 반발로 실패하면서 터키경제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전락, 지난해에만 2백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정의발전당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국제통화기금(IMF) 개혁안 수용·민간경제 소생 등의 공약으로 소시민층을 파고들었다.

바레인에는 걸프만 주둔 미해군함대 본부가 자리잡고 있으나 미군기지 문제가 직접적 선거이슈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바레인 일간지 알아얌(Al Ayam)의 칼럼니스트 소산 샤이르에 따르면 최근 이슬람권에 나타나는 이슬람계 정당의 약진은 "기득권층과 정부의 실책이 이슬람 정당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라호르 경영과학대 국제정치학 교수 라슐 바크슈 라이스에 따르면 "이슬람교도 사이에 그들의 엘리트, 정부, 체제가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실망감이 커가고 있으며, 이것이 이슬람 정당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파키스탄에서도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면에 "이슬람의 정체성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분명히 개입돼 있고 테러와의 전쟁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라이스 교수도 부인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는 분명히 미군의 주둔에 대한 반감이 존재하고 있고, 무샤라프 대통령의 친미정책이 이슬람 정당에 의해 공공연히 정치 이슈화됐다.

모로코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이슬람 단체의 활동이 금지돼 대부분 총선 후보가 정부와 연결돼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슬람의 정체성 보존이나 무슬림세계 보호 등을 강조하면서 암암리에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해 왔다.

모로코 하산대 법대 무하마드 다리프 교수는 "파키스탄, 바레인, 모로코, 터키의 국민들이 이슬람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은 단순히 사회-경제문제의 해결에 대한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고 분석한다.

"이들 아랍권의 무슬림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 아랍문화에 대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며, 이슬람계 정당들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칠회기자 chilho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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