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실이 선이다

한가로울 때면 나는 곧잘 도록(감)을 펼쳐든다. 고서화, 도자기, 야생화…거기서 나는 미감 아닌 행정을 읽어내는 재미를 갖는다.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당대의 인걸이 남긴 사회적 고민을 살피기도하고 혹은 우리 땅에 계절의 빛을 더해주는들꽃을 보면서 도시 미관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연구실 창을 스치고 가는 이른 겨울바람이 소소함을 더한다. 책장 속의 낡은 도록을 들추다 90년대 중반에 전시한김호석의 '역사인물화집'에 손이 갔다. 근대한국을 걱정하고 몸을 던진 20명의 인물들을 작가가 골라 한데 모은 것이지만나에게는 역시 그림으로서 보다는 행정학 책으로 읽혀진다.

그 중 유독 도산에 눈길이 머문다. 작가의 심성으로 그려낸 깡마른 그의 모습에선 곧은 기품과 오로지 실(實)을 찾으려했던 행동철학이 배어난다. 거짓과 허례와 말을 버리고 참과 실천 그리고 행동에 바탕을 둔 힘을 선으로 여겼던 분이 아니던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도 역시 실이다. 언제 어디서건 실제문제와 현장에 강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론을 무시한다거나 폄훼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론과 말씀은 때로 공허한 까닭에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사회에 인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가운데 나는 최근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술학과의 공개 강좌인'화랑경영과 미술시장 현황특강' 과 그 부설 '갤러리 예술사랑' 주관의 '미술품 경매전'을 참관한 적이 있다.

6주 동안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화랑대표자들과 미술시장의 전문가들로부터 그 현장의 소리를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수행한 미술경매는 칠판속의 이론을 현장의 힘으로 끌어내는 생생한 실습의 장으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회는 현장 대응이 가능한 능력을 요구한다. 문제해결 능력은 현실과 현물의 바탕 위에서 찾아질뿐 아니라 그렇게 형성된 능력이어야 자기 것으로 착근되며 나아가 재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육군3사관학교 교수.행정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