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농업도 프로화 해야

가을 걷이를 하고난 들판은 서글프다. 특히나 올해는 더 서글픈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2년후 농산품 완전개방이 된다면 이들 농민중 상당수는 보따리를 싸고 도시에서 방황하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 농업이 사느냐 죽느냐 중대 기로에 서 있는데도 아무도 농업 얘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자라고 농사일을 직.간접으로 겪었는데도 말이 없다. 먹는 것 걱정없고 그까짓 모자라면 수입하면 될게 아닌가 생각해서 일까. 농촌이 "나 살려주시오" 하고 거리로 뛰쳐 나와도 못본 척 한다.

정치권도 지도자도, 소위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도 무관심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환부는 드러내 수술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농업문제만은 모두가 드러내 놓기를 꺼린다.

농업은 지금 외부적으로 개방화를 거스릴 수 없는 입장인데다 내부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는 원초적으로 한계를 지닌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개방화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지탱할수 있는 것은 한우와 쌀이었다.

그중 한우는 이미 무너졌고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쌀마저 완전개방으로 무너진다면 농업은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농민들이 '쌀사수'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쌀은 95년 WTO 협상에서 완전개방을 10년간 유예하는 대신 최소시장 접근물량(MMA)이란 희한한 조건을 내세워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수입하도록 했었다.

그 시한이 2년뒤 도하 개발 아젠다(DDA)협상이다. 이 협상에서 한국은 완전 개방을 받아 들이든지 아니면 MMA물량을 늘이는 조건으로 유예기간을 늘이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 해야 한다.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개방을 유예시킨다 해도 농촌 사정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 질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 농업 평균소득은 연 2천 300만원. 농가부채가 평균 2천 100만원이다. 농민들은 지금이라도 농사를 팽개치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데 평생 땅만 파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으려면 경쟁력 있는 작목을 개발하고 특성화 해야 하는데 말은 쉽지만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농촌이 영 살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좁고 험난해도 헤쳐 나가면 살길은 있다. 그 길은 400만 농업인구의 80%에 이르는 젊은 농민들이 가야 할 길이다.

그럴려면 우선 농업도 프로화 해야 한다. 먹고 살기위한 농사가 아니라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농산물이 개방된다 해도 중산층 이상에는 아직 비싸도 안전한 신토불이 농산물을 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런 소비자층의 입에 맞는 유기농이나 친환경 농산물등 특수 농법을 개발한다면 충분히 판로를 개척할 수 있다.

다음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안된다. 중간 거래상들의 농간이겠지만 포장속에 윗줄만 그럴듯 하게 넣고 밑에는 상한 과일을 넣는다든지 수입물을 섞어 판다든지 해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품질좋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은 농민들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농민들도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 자기 제품을 사이버를 통해 선전한다든지 소비자와 직거래를 터 소비자층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요즘 소비자와 농촌을 연결하는 농문화는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정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거나 고향농산물 팔아주기운동, 그린투어리즘 등이 그것이다.

얼마전에 경북 청도 풍각의 한마을에서 사과따기 체험행사가 있었다. 당초 100가족을 초청키로 했던 행사가 700여 가족이 몰려드는 통에 하루만에 사과는 동이나고 되돌려 보내느라 혼이 났다고 한다. 농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위의 세가지 사실에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와 사회도 농민들이 방울을 달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 줘야 한다. 농업은 우리 생계를 책임지는 기초산업으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미국등 선진국들이 우리가 쌀농사를 포기한뒤 식량문제를 협상무기로 삼을땐 속수 무책임을 알아야 한다. 필요한 농산물은 갖고 있는게 도리다.

도기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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