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충남 천안에서 두 부류의 정치행사가 열렸다. 민주당을 탈당,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전용학 의원(천안갑)의 개편대회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이 마련한 천안지역 택시기사와의 간담회가 그것이다.
개편대회장에서 만난 이성민(38.건축업)씨는 "전 의원이 민주당에 있을땐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한나라당으로 옮긴 지금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며 "전 의원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 후보와 간담회에 참석했던 택시기사 오영춘(47)씨는 "누가 대통령이 돼야한다는 공감대는 아직 기사들 사이에서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얘기보다는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에 대한 얘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가 한달도 채 남지않았지만 충청권의 기류는 갈피를 잡기 힘들다. 워낙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지역주민들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마땅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는게 많은 이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지난 87년 13대 대선 이후 처음으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JP)의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치르는 선거라는 점도 표심의 향배를 가늠키 어려운 대목이다.
87년에는 JP가 직접 출마했고 92년 14대 대선은 3당 합당체제에서 진행됐으며 97년 대선은 소위 DJP연대 아래 치러져 충청권의 선택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과 대비가 되기 때문이다.
JP 퇴조의 틈새를 가장 재빠르게 치고 들어온 쪽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다. 이 후보는 지난해초 선대의 세거지인 충남 예산의 생가를 복원해 충청권을 '정치적 고향'으로 선택했다.
더불어 지난해말에는 김용환 선대위 공동의장과 강창희 최고위원을 영입, 외연을 확대함으로써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자민련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지난 10월초 대전과 충남에서 처음으로 권역별 선대위 발대식을 가졌고 현역 의원은 물론 물론 유력인사들을 대거 끌어들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드러났듯 예산을 중심으로 천안, 아산, 연기 등 충청서북부쪽의 민심은 이 후보쪽으로 기울어진 양상이다.
이 후보가 부친의 묘소를 예산땅에 모신것도 충청권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충청권에 공을 들이는 것과는 달리 이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30%대에 머무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지지율은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다.
충청권내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와 비슷한 지지를 얻고 있는 국민통합 21 정 후보에 대해선 '거품'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윤여준 의원은 "당내 여론조사결과 최근 이 후보가 정 후보의 지지율을 근소한 차이나마 뛰어넘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가 15일 전격회동을 갖고 단일화에 합의함으로써 충청권 민심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9일 대전일보 여론조사 결과 충청권은 2강(이회창 33.2%, 정몽준 33.4%) 1중(노무현 12%)의 구도였다.
노.정 단일화 여론이 50.8%에 달했고 단일후보 선호도는 정몽준 후보 60.1%, 노무현 27.6%로 나타났다. 특히 후보가 노 후보로 단일화되면 이회창 후보가 앞섰지만(이 36.6%, 노 35.1%) 정 후보로 단일화되면 정 후보가 월등히 앞서는 것(이 34.1, 정 45.1%)으로 나왔다.
단일화 합의이전의 여론조사에서 나온 이같은 결과는 실제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의 시너지 효과까지 계산한다면 더욱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몽준 후보는 40, 50대 주부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참신하고, 산뜻한 이미지가 풍기는 사람인데다 집권해도 절대 부정부패에 연루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호감을 사는 것 같아요".
대전에서 건강보조식품 판매업을 하는 송연희(51.중구 유천동)씨는 정몽준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며 자신과 같은 이유 때문에 무작정 정 후보를 좋아하는 주부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노.정 단일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다. 김광식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상대적으로 수구적인 한나라당 이 후보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성향이 다른 두사람이 합쳐서 지속적인 개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며 "DJP 연대나 3당 합당 등 역사적 교훈에서 보듯 이질적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젊음의 거리인 대전시 유성구 궁동에서 주점을 하는 김훈석(34)씨는 "노무현 후보가 젊은 층에 인기가 있는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조를 지켰다는 점"이라며 "자신의 정치역정은 물론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단일화 합의에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어느때와 달리 대선후보들이 충청권에 공을 들이는 것은 DJP 공조속에 치러진 지난번 대선에서의 표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국적으로 김대중 1천32만여표, 이회창 993만여표를 얻어 39만여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충청권에서는 김대중 108만여표, 이회창 67만여표로 40만여표의 차이를 보였다. 충청권이 대세를 좌우했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자, 다시 이번 대선의 승부처로 떠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충청권 주민들의 의중은 아직 뚜렷하지는 않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도 구체적으로 의중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는 JP도 이런 충청권 주민들의 성향과 민심을 읽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전일보=김시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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