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4)83년의 실패

82년 시즌 마운드를 책임졌던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가 83년 시즌 들어 나란히 부진에 빠졌다. 이들은 82년 각각 15승씩 올려 45승을 합작했지만 83년 시즌 들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삼두마차 마운드'의 부진으로 시즌 초반인 4월27일 5승1무8패로 6위에 머물렀고 5월26일 12승1무17패로 한 계단 위인 5위로 상승했을 뿐이었다. 이날 서영무 감독이 전격 퇴진했다.

아마 야구 지도자 시절 온갖 영광을 몸에 지니고 다니던 서 감독은 성적이 우선시되는 프로 세계의 비정한 원리에 따라 쓸쓸히 짐을 챙겨야만 했다.

이충남 조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시즌 중 감독 경질이라는 극약 처방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전기리그서 5위(21승3무26패)로 처진 뒤 후기리그에서 2위(25승1무24패)로 상승했지만 종합 4위(46승50패4무)에 그쳤다.

이 해에 타격의 달인 장효조와 국가대표 에이스 김시진이 입단, 전력이 강화됐으나 기둥 투수들인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의 부진이 원인이었다. 이들은 그해 황규봉과 권영호가 각각 6승, 이선희가 5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나마 김시진의 활약이 위안을 줬다. 김시진은 세 선배들의 승수를 합한 17승을 혼자서 거두었다.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코칭 스태프에 대한 대대적인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서영무 감독 경질을 계기로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우승 압박감'이 이후 초래할 '단명 감독'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감독 대행을 맡았던 이충남 조감독이 물러나고 11월1일 OB 베어스 창단 감독으로 원년 우승을 일궈냈던 김영덕 감독이 사령탑으로 들어섰다.

수석 코치로 대구 토박이인 정동진, 타격 코치는 롯데 창단 감독인 박영길, 투수코치에 상업은행 감독을 역임한 뒤 MBC 청룡서 투수코치로 활동한 유백만, 2군 코치로 경운중 감독인 박창룡씨가 자리를 잡았다. 우용득 배터리 코치를 포함, 명성이나 능력면에서 당대 최고인 5명의 코치가 김영덕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

전력 보강도 이뤄졌다. 재일동포로 뛰어난 구위를 갖고 있던 김일융과 포수 송일수가 팀에 합류했다. 선이 굵은 '서영무 야구'에서 섬세하고 치밀한 '김영덕 야구'로 색깔을 바꾼 삼성은 김 감독의 야구에 맞는 우수한 재일동포 선수들까지 영입,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한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잔수에 밝은 김영덕 감독은 84년 시즌 큰 파문을 일으킨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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