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美 '반도체 시비'의 속셈

국내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가간 통상 마찰이야 국제 사회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지만 반도체에 대한 최근 미국의 압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만큼 정부의 철저한 대비책이 요구된다.

특히 여중생 2명을 숨지게 한 미군에 대한 무죄 평결로 대미(對美) 감정이 좋지않은 데다 '레저용 픽업'에 대한 특소세 부과 문제도 미국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등 우리의 조세 행정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마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따라서 외교 통상 문제에 있어서만은 질질 끌려다니다 상대방 입맛대로 해주고 우리는 결국 뒤통수를 맞는 '무능 외교'를 재연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의 제소를 받아들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한다고 22일 밝혔다. 명목상으로는 이들 업체에 지원된 보조금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금지 보조금에 해당되는지를 조사해 우리나라 D램 제품에 상계관세(相計關稅)를 부과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하이닉스반도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마이크론사는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할 목적으로 5개월 동안 재경부와 채권단의 허락 아래 경쟁사인 하이닉스를 샅샅이 조사했다. 그러나 헐값 시비와 반도체 헤게모니를 미국에 뺏길 수 없다는 여론에 밀려 지금은 인수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따라서 이번 반도체 시비는 인수를 시작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책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의 48%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수출 최대 시장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면 반도체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통상 압력에 굴복, 하이닉스가 헐값에 매각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하이닉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이닉스가 한미 반도체 전쟁의 전리품(戰利品)이 되느냐 마느냐는 바로 정부의 외교 능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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