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당·지옥 오간 노무현 후보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지난 9월말 "검증도 안된 바깥에 있는 사람을 끊임없이 연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양지만 좇는 정치는 이젠 끝장내야 한다"며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의 참패로 노풍(盧風)이 사그라져 버린 데 대한 '마지막 심술'처럼 느껴졌을 때였다. 당 일각에서조차 "노 후보로는 재집권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확산됐고 이와 관련, 중도개혁 세력을 자임하던 일부 의원들이 전 국무총리를 지낸 K, L씨 등 거물급 정치인들을 상대로 영입제의를 하는 등 물밑접촉을 벌였었다.

게다가 '노무현식 어법'이 연일 도마에 올라 악재를 키웠다. "정치권 절반 이상을 물갈이해야 한다"거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 "제가 시정잡배라면 한나라당 모씨는 양아치냐"고 막말을 쏟아냈고 심지어 '깽판'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3월10일 민주당 대선후보 울산경선에서 점화돼 광주경선에서 달아오른 노풍의 불길이 그렇게 잦아들 것으로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국민경선 이후 이회창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기껏 35% 안팎을 맴돌 때 노 후보는 무려 6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었다. 여기에는 인터넷의 위력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조직력이 더해져 노풍의 강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후보당선 이후 YS를 만나 시계를 내보이며 구애를 한 것이 역풍을 가져다 주기 시작,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던 게 사실이다. 정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촉발되지 않았을 경우, 그의 재기도 불투명했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노 후보는 그러나 이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간 뒤 단일후보로 확정되면서 칠전팔기의 인생역정을 여실히 증명했다. 고비고비마다 정치적 결단을 내려 난관을 극복했고 타협과 설득을 통해 당내 반노파를 중재했다.

여기에는 노 후보 자신 뿐 아니라 정동영 정대철 천정배 조순형 의원 등 당내 개혁연대 소속 의원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의원 10여명이 집단탈당, 그의 정치적 리더십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노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24일 남겨둔 대선구도는 시계제로 상태로 돌변했다. 그가 다시 한번 노풍을 재점화할 수 있을 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