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도세자 애도 북향 사립문

조선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는 궁중 여인들의 암투와 붕당간 갈등의 표적이 돼 뒤주에 갇혀 굶어죽었다. 28세의 나이로 죽어가는 사도세자,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던 세손(훗날 정조)의 슬픈 이야기. 북비고택(北扉古宅)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당시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訓練院) 주부 이석문(李碩文)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세손을 업고 뒤주에 갇힌 채 죽어가는 사도세자에게 달려간다.그러나 뒤주를 지키는 병사와 신하들은 "어명 없이 누구도 사도세자를 만날 수 없다"며 가로막는다.

이에 이석문은 "아버지와 자식이 만나는 데 어찌 어명을 기다리란 말인가"라며 주위를 밀치고 부자 상봉을 시도한다. 이 사건으로 이석문은 곤장 50대를 맞고 파직됐다. 파직된 그는 사도세자 참사 후인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애도하며 북향으로 사립문을 낸 집(北扉宅)을지었다.

그가 북비고택에 은거하는 동안 이해관계가 걸린 당파에서 벼슬을 권하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고 평생을 이곳에서 떠나지 않았다.현재의 북비고택은 북비택을 별도의 살림채로 담을 두르고 대문채, 사랑채, 행랑채, 안채를 대지 안에 구성하고 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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