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자전거 신문'의 함정

'자전거 신문'.

스포츠.연예기사를 다루는 스포츠지(紙)나 증권.부동산 정보를 주로 다루는 경제지처럼 자전거 뉴스만 전문으로 보도하는 신문인가 싶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보던 신문을 끊고 자기네 신문을 봐주면 자전거를 공짜로 주겠다고 선전하는 신문을 비꼰 신 조어(造語)다.

신문사가 구독자 확장을 위해 공짜 경품을 뿌리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신문들이 원조다.60년대에 담요나 밥솥같은 것을 뿌렸었다. 최근 내로라하는 한국의 일부 메이저 중앙지들이 40여년전 남의 나라 언론계의 못된 암시장 폐해를 본뜨고 있다.

경품 품목도 한술 더 떠서 자전거에다 전화기.뻐꾸기시계, 비데, 에어컨형 선풍기, 정수기, 체중계…. 우수마발 다 내걸고 있다. 언젠가는 승용차나 아파트까지 내놓지 않을까 싶을만큼 판촉 경쟁 탈선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신문들의 그런 탈선만 보면 마치 신문업계가 자율성도 없고 협정이나 규약도 만들지 못하는 무뢰배 집단으로 생각될지 모르나 실은 그렇지 않다.신문공정경쟁위원회가 구성돼 있고 판매국장협의회 공정경쟁 자율규약과 신문고시도 제정돼 있다.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을 통해 독자들의 구독 선택권을 보호하고 존중하자는 이성적인 제도를 충분히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그러한 자율규약과 신문고시규정을 큰 신문들이 저먼저 위반함으로써 신문시장이 혼탁해지고 양식있는 독자들의 따가운 비판이 신문업계 전체에 덮어 씌워지고 있다는데 있다.

최근 신문공정위원회는 동아 조선 중앙 3사에 대해 상습적인 규약위반(월 100건 이상)을 들어 '공개경고' 이상의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공정위가 규정한 규약위반 행위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공짜자전거는 물론이고 이삿짐 날라주기나 강제구독 투입도 '위반'이다. 5만4천원짜리 자전거 1대 주다 들키면 100만원의 위약금을 물리게 돼있고 아파트 이삿짐 나르기 두번이상 해주면 해당 아파트 총가구수 10%의 1년치 구독료를 물어야 한다.

이번에 공개경고 받은 3개신문사들에 부과된 위약금은 D일보가 15억원, J일보가 23억원, C일보가 15억원이나 된다. 그런데도 53억원 중 1억4천만원만 내고 51억여원은 안내고 있다(9월19일 자료 기준).

규약을 겁안내는 이들 신문사의 계산법은 이렇다. 일단 자전거 1대(5만4천원)를 공짜로 주고 남의 신문독자 1명을 빼오면 1년구독료 14만4천원을 버니까 두세달 초기구독료를 무료로 해줘도 자전거 값 빼고 5만여원이 남는다. 100명 끌어오면 연 500만원이 남고 다음해부터는 약 1천400만원이 남는다(종이값과 배달비용은 부수증가에 따른 광고비 단가상승효과로 거의 상쇄한다고 보고).

위약금 떼먹을 배짱만 있으면 규약은 위반할수록 득이 되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판촉 위약은 먹고살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까. 그 반대다. 위약행위로 경고를 받은 신문사들일수록 '부자신문'들이다. IMF를 거치고 난 2000년 기준으로 이들 신문사의 영업매출은 3천500억~4천700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만도 약 100억~420억원이나 된다. 반대로 자전거 공짜로 안주거나 못주는 지역신문들은 평균 12억원씩 적자를 냈다.

과연 이러한 부자신문들의 상습적인 위약과 위약금 떼먹기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언론계의 양식과 신뢰를 존중하고 믿어왔던 다수 양식있는 독자들의 심판에 맡기자. 그리고 독자들의 입장에서 공짜선물 받고 '자전거신문'으로 바꿔 보는 것이 과연 자전거값만큼 이득일지 손해일지만 계산해 보자.

우선 어느날 아침 '구독 OK'한마디만 하면 자전거 1대가 현관앞에 배달되고 덩달아 두세달 새 신문을 공짜로 볼수도 있으니까 어제까지 보던 기존신문 구독료 나가던 것도 스톱돼 꿩먹고 알먹는 기분이 된다.

자전거 1대값은 물론 공짜소득이다. 기존에 보던 지역신문값 두서너달치 안내는것도(2만7천원)득이 된다. 합계 8만여원을 버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구독료를 지역신문보다 3천원을 더 내야하고 10년 장기구독이면 40만원쯤 더 내야 한다. 중앙지가 페이지 수도 많으니까 40만원쯤 더 내도 괜찮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언론계의 최고 연구기관인 언론연구재단의 조사자료를 참고 해보자. 중앙지의 전면광고는 매주 평균 96.5면이나 된다. 지역신문 7.5면에 비해 무려 10배나 광고가 더 많다. 페이지는 많은데 광고비율이 높다는 얘기다. 지면이 많고 부피가 두껍지만 지역기사 정보량이 지면수와 정비례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언론재단의 또다른 기사내용 분석을 보자. 지역민에게 지역뉴스가 중요하고 유익하다는것은 커뮤니케이션 이론 따위를 들먹일 것도 없이 보편적 상식이다. 연구재단 조사에는 지역경제뉴스 지면구성비율에서 지역신문이 5배많고 지역문화뉴스는 40배, 지역사회기사는 60배, 종합지역정보는 80배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작 자전거 1대에 깜빡해서 지역신문보다 수십배이상 적은 양의 지역뉴스만 접하느라 지역돌아가는 사정에 깜깜해지고 10년이상 장기구독동안 자전거 10대값만큼 더 비싼 구독료를 내야하는 '함정'에 빠지고 안빠지고는 독자들의 몫이다.

언론계가 해야할 몫은 양식있는 절대다수 지역독자들의 합리적 구독의사 결정을 흐리게하고 훼손시키는 부끄러운 판촉전쟁을 빨리 끝내는 일이다.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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