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정자(精子)은행이 탄생된 건 단순한 불임부부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학계의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 할수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남편의 무정충(無精蟲) 등에 기인하지만 반대로 불임의 원인이 아내쪽에 있을땐 이른바 대리모(代理母)에 의해 아이를 갖지만, '대리모 활용'엔 복잡한 문제가 종종 야기돼 아내들이 꺼리는게 상례. 바로 모성애(母性愛) 탓이다.
처음엔 철저한 계약에 의해 '남의 아이'를 키워준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일관하지만 10개월간 자기 배속에서 크는 '아이'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대리모'가 아니라 '어머니행세'를 하려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씨받이'의 반란이라고 할까.
▲그래서 비교적 문제가 없는 '정자은행'은 점차 번성했지만 이 '정자은행'도 당사자들에겐 생각지도 못한 문제로 지금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한다. '정자은행'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기 시작, '얼굴없는 아버지'에 대한 집착으로 유럽이나 미국 곳곳에서 소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 2세들이 자라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면서 임신이나 유전병 등으로 집안 병력에 대한 의사들의 질문에 유독 어머니쪽의 유전자 밖에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품기 시작한 의문이 결국 자신의 탄생비밀을 알아버리게 된게 불행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들의 생부(生父)에 대한 애착은 끝내 정자은행의 비밀금고를 열어 제치고 그들의 아버지를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현실적으로 그 아버지를 만나는 케이스도 많다고 한다. 조용하게 지내던 3, 4가정이 한꺼번에 닥친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게 지금 유럽에서 겪는 '정자은행의 후유증'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서울지법 가사단독판사는 최근 아내가 이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아 낳은 다섯살짜리 아이의 친권(親權)이 그 남편에게는 없다는 판결을 내려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판결이 더욱 문제가 된 건 2년전 서울지법에선 똑같은 상황에서 혼인중에 임신한 아이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추정한다는 민법의 규정을 들어 친권을 인정한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친권을 부인한 재판부는 친생관계는 자연적 혈연관계를 기초해 정해지는데 자신의 정자로 낳지않은 아들에 대한 친권을 인정할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과학이 개입함으로써 생긴 평지풍파는 여기에서 머물것 같지 않기에 더욱 걱정스럽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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