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영세민들이 '퇴출 공포'에 떨고 있다. 세가 싸 이들이 깃들 수 있던 허술한 동네가 아파트 재개발 바람에 빌라 열풍까지 불면서 사라지고, 집 세는 갈수록 오르기 때문이다.
대구 대현2동 '감나무골' 일대에서는 최근 주거환경 개선지구로 지정돼 낡은 주택들이 철거되면서 수백 가구의 영세민 세입자들이 살 곳을 잃었다. 성철근(55)씨는 지은 지 50년 된 낡은 집 2평이 그의 보금자리이지만 오는 28일까지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10년 전 뇌수술을 받은 뒤 직장과 가정을 잃고 지금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옆집에서 주는 밥을 얻어 먹고 살지만 이미 전기마저 끊겨 골목길 가로등에서 끌어 와 쓰고 있다.
빌라가 들어섬으로써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한 할머니도 같은 하소연을 했다. 대구시청에 따르면 시내 전체 주택 중 아파트·빌라 비중은 10년 전보다 10%포인트 상승해 작년 말 기준으로 66.5%에 달했다. 도심 곳곳의 단독주택이 헐리면서 공동주택으로 변모, 영세민들의 주거 기반이 사라지고 있는 것.
대구 비산동 한옥 월세방에 사는 이주순(68·가명) 할머니는 지난달 집 주인으로부터 10만원 하던 월세를 15만원으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입이라고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영세민 보조금 15만원이 전부여서 이달부터는 방세를 내고 나면 쌀 살 돈조차 없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대구 서문로 오토바이 골목 인근 부엌 없는 한옥 단칸방에 사는 정순자(80·가명) 할머니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100만원에 전세 들어 27년간 살아왔으나 미국에 사는 집 주인이 집을 판다고 연락해 왔다는 것. 할머니는 "새 주인이 들어오면 나가라 할텐데 100만원 들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서구제일복지관 장진열 사회복지사는 "비산·원대·남산·칠성·대현동 등에 흩어져 있던 영세민 터전들이 빌라·아파트 개발 바람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며, "월세까지 덩달아 올라 1명당 10만~20만원에 불과한 국가 보조금에 기대고 사는 노인·중증장애인 도시 영세민들이 엄청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세민을 위한 영구임대 아파트는 1995년 이후 건설이 중단돼 현재 3천여명이 기약없이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또 이미 1만9천여 가구에 달한 대구시내 영구임대 아파트의 기존 입주자들 역시 국가가 관리비 지원을 외면하는 바람에 관리비 체납률이 30%를 넘어섰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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