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제기랄, 오늘도 날 궂으니 공치겠군. 술취한 도시가 아랫도리 벌린 채 곯아떨어진

새벽 4시, 최씨는 밤새 고인 가래 아스팔트에 뱉으며

잔뜩 목을 움츠리고 걷는다.

마누라는 오늘도 다친 허리 도져 쉬어야 하니

혼자 놉 시장으로 나가는 최씨의 발길은 우중충하다.

저만큼 모닥불이 비치고 불가를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

그렇지 저 불빛, 고향생각 나는군.

횃불 비춰들고 어둠 향해 초망 던지면

하얗게 하얗게 걸려들던 여울의 은어떼, 모닥불 가의 술추렴.

제기랄, 최씨는 조금 엷어진 동녘 하늘

힐끗 쳐다보고, 두 손을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이구락 '놉 시장(市場)'

◈놉 시장은 아마 인력시장인 것 같다. 이른 새벽 시내 몇 곳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팔려(?) 나가길 기다리는 중년 사내들의 웅크린 어깨 그림자가 모닥불에 어려 휘청거린다. 이들 사이에 일찍 잠 깬 노숙자도 간간이 기어든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우울한, 그렇지만 이미 흔한 풍경이다. 이들에게 고향에 대한 기억은 세속에서 망가진 삶의 원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회상의 자유가 아니라 세 끼 밥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최소의 풍요이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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