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기어음 다시 나돈다

IMF사태 이후 구조조정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던 만기 4∼6개월 짜리 장기 어음이 연말 경기악화와 함께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시 나돌고 있다.

또 이 어음을 받아든 대기업의 협력.하청사나 개인.영세 납품업자들은 높은 선이자를 물고 할인해 사용하면서 영세업자들이 중.대기업들의 경기악화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넘겨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포항공단 일부 업체들에 각종 소모품을 납품하는 김모(45)씨는 지난 8월까지의 납품대금 500여만원을 9월말에 만기 4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재받았으나 최근 사채업자를 통해 390만원에 할인해 사용, 사실상 11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 모 중견기업에서 협력작업을 하는 이모(47)씨는 "최근 원청사에서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4개월짜리 어음을 받던지 결제를 2달만 기다리던지 선택할 것을 요구해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 업자들에 따르면 이처럼 장기어음 발행이 갑자기 부활한 것은 지난 3분기 이후 경기가 하락하면서 매출이 둔화되자 중급규모 이상의 기업들이 올 연말∼내년 설까지의 자금성수기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산된 영세.개인 창업자들간에 수주경쟁이 가열되면서 원청사의 횡포가 먹혀들 소지가 예전에 비해 오히려 커진 것도 장기어음 부활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하청사 대표 최모(42)씨는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문은 턱없이 줄어 적자수주도 많은데 이마저 장기어음을 받던지 아니면 직업을 그만두라는 식"이라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자금사정은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대해 모 은행 관계자는 "최근들어 중소기업에서 어음발행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떨어지는 중소 기업인들이 대통령 선거 이후 내년 상반기까지의 불확실성에 따라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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