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토 빅뱅 뭘 뜻하나

22일 폐막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는 역사적으로 냉전시대의 소극적 집단안보기구에서 냉전후 세계의 소규모 국지분쟁과 테러에 개입능력을 갖춘 적극적 안보기구로 변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회원국 확대 △ 이라크 문제에 대한 대미협조 확인 △신속대응군 창설 △군사력 증강 등 회의 성과는 유럽의 안정을 극대화하는 한편, 동유럽-특히 발칸 국가들-을 활용해 중앙 아시아와 중동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세계경영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은 회의에서 이라크전에 대한 유럽의 동참결의를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으나, 회원국 확대와 주적개념의 전환 등 커다란 성과를 얻어냈다. 나토 회원국들은 이라크에 유엔결의 준수를 촉구하는 강력한 성명을 냈으나, 미국의 외교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동참하겠다는 선언은 하지 않았다.

안보리 논의 때 미국의 자동적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던 유럽측 입장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회원국 정상들은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등 동구권 7개국을 신규회원국으로 가입시켜 나토의 회원국 수를 현 19개국에서 26개국으로 늘리는 의안을 승인했다.

이밖에 나토의 안보대상을 재래식 전쟁만이 아니라 테러위협으로 바꾸고, 분쟁지역에 빠르게 개입할 수 있는 2만1천명 규모의 신속배치군 창설에도 합의했다. 안보대상의 수정은 구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응한 지역안보기구로 출범한 나토가 주적을 테러리스트나 이른바 '불량국가'들로 바꾸어 유럽 이외 지역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을 뜻한다.

신속대응군의 창설은 유사시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한 나토의 개입여지를 열어놓았기 때문에 이라크 침공을 앞둔 미국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회의는 또 회원국의 방위비분담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의 뜻을 수용하고, 신속한 병력배치를 위한 대형수송기 도입 등 군사장비 현대화 계획과 새로 나토군 본부가 설치될 브뷔셀과 미국 중심의 2원적 전략지휘체계 수립에도 합의했다.

나토의 확대는 미국의 동구권 시장과 이 지역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효과 외에 나토군의 활동영역을 전략요충인 카스피해 유전지대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가입은 중동과 중앙아시아까지 나토군의 활동무대를 넓히게 된다. 미국의 이같은 복안은 이미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전에 마련됐다.

독일 안보문제 전문가 클라우스 베커에 따르면 "백악관이 나토의 빅뱅을 결정한 것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전인) 지난해 5월경이었다". 9·11 테러의 발발은 그 때까지만 해도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 미온적인 지지밖에 얻지 못하던 미국의 계획에 가속도를 더했을 뿐이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의 테러가 있기전인 지난해 6월 바르샤바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토를 발트해와 흑해연안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지지를 표명했었다. 미국은 지난 15개월 동안 흑해에서 중국 북부국경 인근 지대에 이르는 2천 마일 선상에 군사기지 설치를 서둘러 왔다.

미군이 불가리아, 그루지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에 주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가리아 안보전문가 플라멘 판테프는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 불가리아군이 지원하고 나선다면 그 무대는 아마도 사라포보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흑해지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루마니아도 유사시에 미국을 지원할 것임을 밝혔는데, 아마도 흑해연안 콘스탄타 기지가 미국에 제공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나토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냉전 이후 재편된 세계질서 속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찾아냄으로써 정체성 위기를 극복했다면, 미국은 나토를 자국의 세계경영 지렛대로 만드는 데 1단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여칠회기자 chilho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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