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늘진 산업현장 외로운 투쟁 2곳

올 겨울은 예년보다 덜 추울 것이란 예보와 달리 산업현장의 근로자들은 오늘도 재해 후유증과 세상 무관심에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어두운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27일 경북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드높은 목소리가 찬 겨울공기를 갈랐다. 역시 세상 무관심 속 고통받는 문경의 진폐환자들은 산업재해의 아픔을 되새기며 28일 전시회를 열었다. 외롭고 힘겨운 투쟁을 벌이는 두곳의 투쟁현장을 돌아봤다.

◇석포제련소 작업환경 개선모임 발족

27일 오후 전국 금속노조와 시민단체 등 14개 단체가 연대한 경북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환경과 주민건강 개선, 노동기본권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영풍공대위)가 출범, 작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날 참가한 80여명은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앞에서 출범 뒤 제련소와 하청업체측에 작업환경 개선과 직업병 의심 노동자의 영풍부담으로 정밀검진 실시, 유급 생리휴가를 보장할 것 등을 요구했다.

공대위는 또 "근로복지공단은 이 제련소 하청업체 인부로 아연부에 근무하다 지난해 8월 숨진 최모(당시 49세)씨를 카드뮴중독사로 인정하고 요양중인 남모(61)씨도 산재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한국시그네틱 정혜경 지회장은 "앞으로 석포제련소에 작업장의 중금속 오염실태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고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치료받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도록 촉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또한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이 최근 석포제련소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은 사전통보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며 "예고없이 작업환경을 정밀 측정하라"고 주장했다.

최근 경희대 한의대생들과 함께 석포리 주민들과 노동자 무료진료에 참가했던 임모양 등은 "진료를 받은 주민과 노동자들이 이빨이 녹아 내리는 치아산식증에 걸리는 등 열악한 작업환경을 호소했다"며 본사에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다.

그러나 제련소측은 "영풍 공대위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며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의 작업환경 측정결과, 기준치이하 판정을 받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문경 진폐증 환자들 전시회 개최

젊을때는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면서 청춘을 바쳤던 광부들이 노년에는 병실에서 진폐증과 투병하고 있다. 문경시 점촌동 문경 제일병원 산재병동에는 272명이 불치의 진폐증으로 투병중이다. 세상 무관심을 원망하던 그들은 그러나 28일부터 이틀간 그동안 틈틈이 만든 수공예품과 서예작품 등 270여점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있다.

환자들은 병상에서 틈틈이 종이·짚·나일론끈·나무 등을 이용한 공예품 제작과 서예 등 취미생활을 통해 장기간의 입원생활에서 오는 무력감을 달랬다.

5년간 투병생활 중인 권혁수(70)씨는 "광부로서 목수일을 했던 경험을 병상에서 취미생활로 되살려 보았다"며 베틀과 물레방아·팔각정 등 목공예품을 내놓았다. "무슨 모형이든 종이로 만들 수 없는 것은 없다"며 자신감 넘친 인석준(62)씨는 종이접기로 해바라기, 장미, 석류 등을 만들어 전시장을 한껏 밝게 만들었다.

경북도 서예대전과 대구·경북 미술대전에서 입선경력까지 쌓은 이상훈(69), 류일신(64), 정연갑(64)씨는 "통증으로 손떨림이 심하지만 붓을 잡으면 온 힘을 다 함으로써 고통까지 참는다"며 병상에서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16년째 장기 입원생활하는 장수복(54) 진폐재해자 문경지회장은 "하루 하루를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이 취미생활에 정성을 들이면서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고 있어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고 말한다.

환자들은 전시회에 앞서 지난 25일에는 가족들이 함께한 바둑·장기·당구·윷놀이 등 경기를 벌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최현숙(39·여) 진폐병동 간호과장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투병생활로 삶의 의욕을 상실, 자포자기에 빠졌던 환자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취미생활을 가지면서 이제는 대다수 환자가 참여, 병동분위기를 한껏 밝게 하고 있다"며 "전시회에 많은 시민들이 관람하고 격려해 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문경·윤상호기자 youns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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