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당당한 미국, 약한 정부

'왜 좀더 일찍이 안했나' '육성으로 해야지 왜 대독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부시 대통령이 여중생사망사건과 관련, 허바드 주한미대사를 통해 사과성명을 냈다. 또 그 후속조치로 허바드 대사와 러포트 주한미사령관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망사건에서 지휘계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문제의 SOFA(한·미주둔군지휘협정) 개정문제는 "양국의 요청이 있을때나 상황이 변했을때 개정이 가능하다"며 원론적이나마 적극 설명하는 자세를 견지한건 역시 미국의 합리주의가 돋보이는 파문 진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사과를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의연하고 떳떳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에반해 우리 정부의 대응자세는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니라고 밖에 달리표현할 길이 없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은 반미시위가 점차 격화, 미군영내 침입까지로 확산되자 긴 친묵을 깨고 "불법 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한마디가 고작이었다. 뒤어어 심상명 법무장관은 "SOFA규정은 특별하게 불평등한게 없고 개정할 의사도 없다"는 표명뿐이었다. 이건 시위를 확산시키려는건지 진정시키려는 건지 도대체 그런 말을 한 의도조차 짐작키 어렵다.

아무리 한·미간의 국내법체계가 현격하게 다르다해도 그렇지 여중생이 2명이나 미군장갑차에 깔려 숨졌는데 재판결과가 무죄라면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되겠는가. 고의성이 없는 교통사고는 무죄라는 법체계를 가진 미국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해도 아마 그 부모들이나 주민·언론들이 그냥 있지 않았을 게다. 부시 대통령 퇴진운동까지 벌어지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건 이번 교통사고의 가해자인 미군병사의 고향에서 한국기자가 만난 그의 부모들의 얘기를 통해서도 확인된 사안이다.

추이가 이렇건대 법무장관이 어짜피 SOFA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면 "미군이 공무(公務)로 일으킨 사고에 대한 재판관할이 미군측에 있지만 부칙으로 사안에따라 양국이 재판권을 호의적으로 포기하도록 돼 있는 조항을 이번에 미국이 받아들였더라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런점을 앞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정부가 적극 노력해 보겠다"는 식으로 언급했어야 했다.

시위가 위험의 도를 넘도록 확산돼도 정부의 어느 누구도 강건너 불보듯하는 이런 정부에다 장관의 경직성 발언, 혹시 미국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화근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이런 저자세에 시위국민들은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꼴됐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없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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