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본사 대선 자문단 후보 정책 검증-교육

이번 대선은 31년만에 다시 양자 대결구도로 치르게 되었다. 각각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서로폭넓은 지지를 받기 위하여 조금씩 화장을 바꾸기는 하지만 이념과 정책에 있어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에 관한 두 후보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두 번 놀라게 된다. 우선, 우리는 두 후보의 교육정책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고, 교육에 관한 공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냉철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문제가 어떤 정책으로도 쉽게 풀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인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육에 관한 한 무(無)정책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무기력증이 팽배해 있지 않은가?교육에 관한 냉철한 문제의식 없이 제시되는 정책은 선심성 공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두 후보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교육예산의 대폭 확보, 공교육의 내실화와 사교육비 부담 해소 등은 교육정책의 공통분모이다. 이회창 후보는 교육재정을 2005년까지 GDP의 7% 수준으로, 그리고 노무현 후보는 GDP의 6%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두 후보는 만 5세 아동에 대해 유치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는점에서도 대체로 일치한다. 모든 국민이 양질의 교육을 가능한 한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교육재정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공교육 내실화와 사교육비 부담 해소와 관련된 정책에 있다. 두 후보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두 후보의 인식은 모든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교육의내실화와 사교육비 사이에는 일종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추측이며, 다른 하나는 이 문제들이 모두 대학입시와 직결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한결같이 고교 평준화 제도를 유지하되, 평준화에서 기인하는 학력저하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교체제를 다양화하겠다고공약하고 있다.

물론, 노 후보는 교육 평등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반면 이 후보는 경쟁적 자율화를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학력저하와 공교육의내실화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학력저하의 문제는 '학력'을 어떤 척도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공교육의 황폐화는 근본적으로 학교의 입시 학원화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3년의 교육과정을 단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하는 현행 입시제도가 존립하는 한, 공교육은 학생들의 이해력, 창의력, 표현력,인성함양 등을 추구하기보다는 수능 '점수'를 목표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입시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이 없는 교육정책이 공허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두 후보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입시정책에서 드러난다. 이 후보는 대학입시를 2007년까지 완전 자율화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한 반면, 노 후보는서울대와 대등한 수준의 지방대학을 20개 가량 육성함으로써 학벌주의 문화를 타파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자율화 정책과 평등화 정책의 장단점을 논하는 대신 한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 자율화는 자칫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자율화를 전제하지 않는 평등화는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모든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한 우리의 교육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교육의 기회가 자율적 경쟁을 통해 분산되어야 한다.

어떤 분야는 어느 지역의 어느대학이 좋다는 식으로 교육이 다원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방분권의 핵심이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교육정책은 교육의 '얼굴'을 바꿀 수 있을지언정 '성격'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정책검증 과정을 통해서나마 이러한 문제의식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진우 계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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