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도청·폭로의 '함수관계'

당신을 누군가 엿듣고 있다면, 게다가 당신도 모르는 새 그 내용이 공개돼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한나라당이 28일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폭로한 내용들을 접하면서 이처럼 자문자답하며 떫은 감 씹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폭로내용의 골격은 주요 정치인과 언론사 고위간부, 취재기자가 당시 정국과 관련해 나눴던 얘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시기적으론 민주당에서 후보경선과 맞물려 '노풍'이 거세게 일고 있었던 반면 한나라당에선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 보.혁갈등에 휩싸였던 때인 지난 3월이었다.

도청내용엔 특히 일선 기자들의 취재내용까지 10건정도 들어있으며 이중엔 매일신문도 2건 포함돼 있다.문건에 따르면 기자의 경우 3월27일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으로 부터 "보수대연합으로 정계개편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을 이회창 후보에게 건의했으며이 후보도 이를 긍정 검토키로 했다"는 내용 등을 전해 들었다는 것인데 사실로 기억된다.

물론 한나라당 측 주장처럼 전화도청됐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나 그 내용이 실제했던 것인데다 단 두사람이 나눴던 얘기란 점 등을 감안하면 그 개연성은분명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문건이 폭로되기 수일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모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부터 "휴대전화까지 도청될 정도로 도.감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 기자도 예외가 아닐거야"라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라면서 반신반의했었다.

한나라당의 폭로과정 역시 씁쓰레할 뿐이다. 문건에 거명된 당사자가 당 출입기자라면 폭로에 앞서 확인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않았던 것이다.결국 김영일 사무총장이 뒤늦게 기자실로 와 "일부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도 있는 것같아 죄송하다"는 식의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뭔가에 쫓기는듯 서둘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연히 대선정국을 연관짓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 이 후보의 지지도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비해 뒤쳐져 있는 현 정국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란 데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단일화를 계기로 노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현 국면을 반전시키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했던 한 당직자의 고민을 전해들었던 터였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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