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따뜻한 두번째 가족 대안가정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가정이다. 친가정이 깨어져 더 이상 가정에서 생활할 수 없는 아이에게 유익한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는일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친가정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대안가정은 내 가정을 열어 가정을 잃은 한 아이를 품는 사회복지운동이다. 지난 4월 대구에서 발족한 사단법인 대안가정운동본부는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가정'이라는 인식에서 출발, 아동보호운동을 실천하는 시민단체다.

'예빈이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여아다. 엄마, 아빠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예빈이를 낳아 키웠다. 하지만 지난해 일용직 근로자인 아빠가 건강이 나빠져 일을 쉬게 되면서 현재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처지.

예빈이의 부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3년간 위탁양육을 의뢰했다.의뢰받은 대안가정운동본부에서는 예빈에게 가장 적합한 대안가정을 물색했다.

갓난아이 키우기를 원하는 가정이 나섰다. 이미 수년간 아동을 위탁양육한 경험이 있는 가정이어서 한결 걱정도 덜었다. 지난 10월 중순 예빈이는 대안가정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갈 예빈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으면…'.

'세살난 엽이는 대안가정을 기다리고 있는 사내아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댁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 모두일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엽이를 돌보기 힘든 처지다.

2, 3년 정도 엽이를 양육해줄 대안가정이 나서기를…'. 대안가정운동본부 인터넷 홈페이지(www.daeanhome.org)에는 이처럼 위탁양육을 원하거나 대안가정으로 떠난 아이들의 갖가지 사연들이 대안가정일기와 함께 실려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양육하지 못하는 아동 대부분은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진다. 각 시설마다 50명에서 많게는 100명에 달하는 아동들이 단체생활을하게 된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국내 요보호아동은 1만2천86명. 2000년도 7천760명에 비해 무려 4천326명이 늘었다. 이 가운데빈곤.실직.학대아동이 5천648명으로 가장 많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입양된 아동은 해외입양 2천436명, 국내입양 1천770명 등 모두 4천206명에 그쳤다. 미국의 경우 가정위탁된 아동은 30만2천500명(92년기준)으로 부모를 떠나 보호를 받는 전체 아동의 70%가 가정에서 위탁보호되고 있다.

영국도3만1천500명(1995년기준)의 아동이 위탁가정에서 보호받고 있는데 전체 보호아동의 65%에 달한다. 특히 10세 미만의 아동은 90%가 위탁보호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체 보호아동의 약 70%가 시설로 보내지고 있으며, 1999년 현재 가정위탁된 아동은 전체 보호아동의 1.5%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린이가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속에 자라고, 가정이 없는 어린이에게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알맞은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은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대안가정운동본부(이사장 이수형)는 이런 대안가정운동을 전문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뜻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설립된 단체다. 건전하고 안정된대안가정을 육성하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대안가정과 아동에 대한 교육.상담.의료.재정.법률적 지원 등을 통해 대안가정운동의정착과 확산이 그 설립 취지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안가정에 대한 인식이 낮아 희망하는 대안가정이 적고, 실제 가정에 위탁되는 아동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재 두아이를 위탁양육하고 있는 김명희 사무국장은 "많은 아이들이 수용되는 시설에서는 가정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힘들다"며 "아동복지시설의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조적 한계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인 대안가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안가정운동본부는 지난 95년 9월 대구에서 시작된 '해뜨는 집'이 모체다. 아동보호와 대안가정에 뜻있는 한 개인에 의해 시작됐다. 하지만 개인이다 떠맡기에는 힘에 벅찬 일.

재작년 우리복지시민연합이 취지에 공감, 이 운동에 뛰어들면서 대안가정센터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신중함과 인내가요구되는 일이기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독립적인 기구가 절실해졌다.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대안가정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족,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학계, 종교계, 기업인, 공무원,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현재 후원회원 포함 160여명의 회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몇몇 개업의들은 대안가정 진료업무를 맡아 무료 봉사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출범후 지난 6개월동안 본부에 수십 건의 위탁 의뢰와 양육신청이 접수됐지만 대안가정으로 연결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김 사무국장은 밝혔다.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대안가정의 조건에 맞아야 하고, 대안가정과 위탁아동간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안가정에 위탁됐다하루만에 되돌아오는 사례도 있을 만큼 딱 맞는 대안가정을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중요한 것은 비록 소수지만 가정을 잃은 아이들이 따뜻한 새 가정을찾았다는 점이라고 실무자들은 강조했다.

대안가정운동본부의 일은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동에게 친가정을 대신해줄 건전한 대안가정을 찾아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위탁아동이대안가정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등 사후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가정방문을 하거나 먼거리일 경우 수시로 전화로 상담한다.이선희 상담실장은 얼마전 전북 익산에 있는 대안가정을 방문했다. 대안가정에서 숙박하며 위탁아동을 관찰하고, 대안가정의 어려운 점을 상담해주기 위해서다.대안가정운동이 단순히 서류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대안가정운동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먼저 희망하는 대안가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동에게 적합한 대안가정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 위탁양육시 적응과정도 문제다. 기존 가족구성원과 위탁아동이 서로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위탁아동으로 인해 대안가정의 나이 어린 친자들이 정서적인 불안증상을 보이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대안가정과 위탁아동에 대한 지원도 과제다. 이선희 상담실장은 "대안가정에 위탁되는 아동은 아동복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수급자로 지정될 수 있고,대안가정은 위탁가정으로 지정받을 수 있지만 가정위탁에 대한 이해부족과 까다로운 수급자 선정조건으로 인해 지정받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대안가정운동본부는 지난달 시민걷기대회를 개최, 대안가정운동의 중요성을 널리 홍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페도 개설하는 등이 운동이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또 내년부터는 대안가정 부모예비교육 등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해 사회적 인식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국내 수많은 사회복지기관이 활동중이지만 대안가정운동은 마지막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분야다. 행정기관이 일일이 대안가정을 찾고 관리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위탁양육이나 입양이 시설수용에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동복지정책의 방향은 자명해지고 더불어 국내 대안가정운동도 한결 활성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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