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선생님으로부터 "장래 커서 뭣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자는 참으로 힘들어 했었다. 농촌의 그 푸근함 속에서 자라느라 농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돼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고민고민 하다 써 낸 답변은 "대통령"이었다. 이런 엉터리 짓은 남 따라 장에 가듯 대구로 유학(遊學)와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반복됐다. 옆자리의 친구는 그때 "너는 정말 꿈이 대단하다"고 했지만, 기자는 그게 전혀 사실 무근의 이야기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기자는 그 후 머잖아 정말 예리한 어떤 분의 분석을 읽은 적까지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답하는 아이들 대부분의 특성은 개성이 없고, 그래서 그 따위 대답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기자는 무릎을 쳤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기자가 큰 꿈을 가졌느니 어쩌느니 했던 그 친구야말로 정말 현실을 알고 개성을 지녔음도 알아챘다.
◈누가 돼도 모든 문제 해결불가
다시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 돌아 왔다. 공식 선거전이 진행되면서 이제 일반 시민들까지 중요한 얘깃거리 중 하나로 그걸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노려 선거꾼들은 자신이 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기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할 것 같이떠들어 대고 있다.
그러나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 말들은 전혀 엉터리이다. 이미 적잖은 대통령을 바꿔 왔지만 이 나라엔 민주화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외신 담당 부장으로서 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루면서 기자는 그런 생각을 확신으로 강화시켰다. 그때 전문가들이 내 놓은 결론은 놀랍게도 "부시가 되든 고어가 되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되든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도 다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우리 대통령 선거라고 해서 뭣이 다르겠는가? 더욱이 우리는 주요 정당들이 서로 뚜렷이 다른 철학조차 확립하지 못하고 있기까지 하다.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진 미국의 양당 정치에서조차 별도리 없다는 변화를 이런 우리나라 대통령이 어떻게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그래서 기자는 시민들에게 정당들의 터무니 없는 과장에 휘둘리지 말 것을 제안한다. 선거가 이미 지역감정이라는 망국적인 정신병을 평범한 시민들에게 덮어 씌웠던 뼈 아픈 전철을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기자의 생각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분명한 것은 단 한가지이다. 누가 권력을 잡아 그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을 삼킬 것이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민들이 선거꾼들에 휘둘려 바보처럼 흥분해 봐야 결국은 남의 좋은 일 시키는 것밖에는 아무 것 아닐 수도 있음을 환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 시민들은 뭘 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이익에 몰두치 못하도록 막고, 진정 시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은 나라 발전의 발목을 정치가 잡고 있는꼴이라 하지 않는가?
이 일은 한 마디로 정치 개혁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바로 이것이리라 기자는 확신한다. 정치만 바로 선다면 어느 누가 대통령을 하든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정치를 사업으로 생각하는 무리들을 척결해야 한다. 선거만 끝나고 나면시민들은 무력해져 정치인을 견제할 힘을 잃고 심지어 바보처럼 이용까지 당하는 만큼, 바로 지금 이 일에 나서야 한다.
◈나보다는 후손위해 투표를
물론 대선 후보들마다 정치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들을 믿어도 될까? 지역에서 지금 진행 중인 이상한 일들은 그 질문에 '노'라고대답한다. 군수 후보 공천과 관련해 출마 희망자들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모 국회의원은 국회가 체포 동의를 해 주지 않아 다섯 달이 되도록 계속 '정치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돈을 준 혐의로 기소된 군수 출마 희망자 3명은 항소심을 거쳐 형이 확정됐는데도 그는 아직 기소조차 되지 못했고 다음달 13일까지만 버티면 공소시효 소멸로 무죄가 될 지도 모를 상황이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비자금 문건 공개 과정에서 이모(66)씨에게 100만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한 국회의원은 검찰 소환에조차 불응하고 있다. 반면 돈을 받은 이씨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앞장서서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소한 예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익을 따라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정치 모리꾼들도 적잖다. 이들이 진정 시민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이제 '시민의 계절'이 돌아 왔다. 정치꾼들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오늘 비록 패배하더라도 내일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보다는 내 후손들이더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 표를 우리 시민들이 '휘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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