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0일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이 삼성의 극적인 승리로 끝나자 대구야구장 지정석 밑 2층 관람실에서 사복 차림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중년 사내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날 삼성의 우승을 지켜본 사람들 중 삼성 구단 임직원, 선수들, 팬등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이 사람의 눈물은 유독 뜨거웠다.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통한의 만루홈런을 맞고 좌절했던 그 사람, 이선희(47)씨 였다.
강산이 두번 바뀐 그라운드에서 삼성이 이승엽과 마해영의 랑데부 홈런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순간 그의 가슴은 벅찬 감격으로 요동쳤다. 끝내기 홈런을 얻어맞고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리는 LG 투수 최원호의 모습은 21년전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이선희씨는 삼성 2군투수코치로 1군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날 사복 차림으로 야구장을 찾았었다. 한국시리즈의 감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11월 중순 그는 "못다 이룬 꿈을 풀어준 후배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맙다. 삼성 야구를 사랑하고 성원해 준 대구시민과 팬들에게 진 빚도 갚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원년의 쓰라린 기억은 여전히 그의 곁을 맴돌고 있다. 해마다 한국시리즈를 할 때면 기억이 되살아나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런 연유로 그는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처음 우승하자 몇몇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다.
사실, 그는 82년 시즌 당시 국내 최고의 좌완투수라는 평가에 걸맞게 15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쳤다. 그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고도 중요한 경기에서 홈런을 맞았기 때문에 팬들은 15승은 기억하지 못하고 홈런 맞은 순간 만을 기억하는 것 같다. 그만큼 뼈아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 중 1군 투수코치로 있다 이정호 등 2군 유망주 투수들을 키워달라는 김응룡 감독의 요청에 따라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바꿨다. 한화 투수코치 시절 연습생이던 한용덕을 스타로 키웠고 구대성, 송진우 등 좌완투수를 조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영욕을 맛본 후 성공적인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이번에 우승하자 만감이 교차하며 옛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그의 눈은 20여년전 열정을 품었던 그라운드를 그리고 있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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