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낚싯밥 공약

50여년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때의 실화다.경북 성주군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고 고향 분위기를 살피러 온 성주군수 출신의 전(田) 모씨가 지지자들과 함께 성문 밖 다리를 시찰했다.당시 읍에서 1㎞쯤 떨어진 문제의 다리는 나무로 된 교각이 낮고 썩어 큰비만 오면 군내 교통이 끊기는 그야말로 지역 숙원사업 대상 1호였다.

후보들마다 표를 얻으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새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공약을 앞다투어 내세우던 때였다. 그러나 다리를둘러보고 온 전씨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면서도 출마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건국 초기라 부산서 서울사이 국도에 끊긴 다리만도 47곳이나 되는데다 궁핍한 나라 살림에 완급이 있어서 읍내 다리놓는약속은 장담할 수가 없으니 어쩝니까...".당선에 결정적인 공약임엔 틀림없지만 뻔히 공약(空約)이 될 걸 알면서 미끼를 던지는 식의 '낚싯밥 공약'으로 당선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신선한 출마포기였다.

대선을 17일 앞둔 지금 후보들이 내놓은 이런저런 정책공약들을 보면서 과연 선거용 낚싯밥공약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게된다. 전국을 돌면서 유세투어를 하고 있는 후보들이 찾아간 지역에 따라 새로 내놓거나 특별히 더 강조하는 공약등을 들어보면 다분히 지역정서나 숙원사업 등 지역민의 입맛에맞는 약속들이 많다.

공무원노조, 노동자·재벌, 호주제 등 특정집단의 이해관계와 맞물린공약도 마찬가지다. 마치 잉어가 더 많은 못으로 알려진 곳에는 깻묵넣은 떡밥같은 잉어 입맛에 맞는 미끼를 내걸고 붕어쪽이 더 많은 못에 가서는 붕어가 싫어할 미끼는 피하는 식이다.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에 가서 주5일제 근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같은 정책공약을 강조 하는것이나 위성도시 주변지역에 가서 그린벨트 '엄격유지'공약은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것이 그런 예다. 대구의 위천공단 관련 공약 같은건 대구 부산 양쪽의 상반된눈치를 보느라 아예 언급을 피해나가는 케이스다.

공약의 방향에 따라 민감하게 표심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공약들은 표밭 눈치봐가며 수시로 말을 바꾸는 경우도나타난다. 국가 보안법 경우 당초 '폐지'입장이었다가 후보가 된후에는 '대체입법'으로 입장을 조정한 A후보 경우나 호주제에 대해 '당분간 유지'입장에서 최근 다시 '임기내 폐지'쪽으로 선회, '폐지'를 주장하고있는 B후보가 그런예다.

기초생활보장세 공약 같은 경우 역시 후보되기 전에는 '소폭축소'를 주장하다가 후보가된 뒤 '소폭확대'로 완전히거꾸로 돌아선 후보도 있다. 잉어 많은 못인줄 알았다가 붕어가 많다니까 낚싯밥을 바꾼 꼴이나 다름없다. 물론똑같은 표(유권자 집단)를 놓고도 뚜렷하게 다른 정책을 내거는 소신있는 공약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유세장에서 쏟아 내놓은 공약들이 특정집단이나 계층의 이해와 맞물린다 싶을때마다 말을 바꾸는 그야말로 선거용 낚싯밥 공약이 어서는 안된다.적어도 대선공약 만큼은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특정이해집단의 이해 배려에 치우친 공약이 전체 국민들의 보편된 바람이나 국익과 서로 배치될때는 공약일 수없다. 또한 100조원이 넘어선 공적자금 부담이 고스란히 넘어가는 다음 정권에서 그 수많은 공약들이 과연 다 지켜질 수 있는 예산능력을 고려한 공약인지 아닌지도 감 잡아야 한다.

그저 입맛에맞는 낚싯밥 공약만 보고 뽑아주다가는 민주화니, 국민의 새정치다, 같은 그럴듯한 '바람'에 끌려 지도자를 두번이나 잘못뽑아헛보낸 10년이란 지난 세월을 또한번 겪게된다. 선거 막바지에 계속 터져나오고 있는 도청시비같은 볼썽사나운 정쟁분위기 바람에 갈수록 더 선명하게 떠올라야할 공약정책 경쟁이 이전투구의 흙먼지속으로 가려져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는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지금 선거보다 더 부각되다시피한 도청시비의 진위는 첨단과학의 기술적인 심판보다 민심이 가슴으로 느끼고 판단할 문제다. 정치권은 도청문제든 선거공약이든 50여년전 공약(空約)을 이유로 후보를 스스로 사퇴했던 시골군수의 신선한정치의식을 거울삼아 진실이 아닌것은 스스로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자세로 대선을 치러줬으면 한다.

입으로 양기가 오른 사람일수록 실속이 없다고 했던가. 소박하고 자그만 공약이라도 진실성과 현실성이 보이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더 챙겨 유권자가 낚싯밥공약에 왔다갔다하는 붕어가 아님을 보여주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