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눌러쓴 모자속에새벽을 담고

가난한 정성을 쥐어주는

아내의 눈인사를 받으면

제 온도보다 조금 더

높아지는 도시락

하루의 생존을

이마에 묶고 꿈을 절구는

아픈 갈증을 동여 매면

미끄럼을 타는 땀줄기

놀이터의 아들이 떠오르고

쨍쨍한 햇발

아픈 허리를 태운다

-박병영 '어떤 일상(日常)'

※이른 새벽 모자를 눌러쓰고 일과를 나서는 가장, 아내가 건네주는 도시락은 따뜻한 온기가 있다.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허리에 꿰차거나 자전거 뒷자리에 묶어 신나게 페달을 밟던 풍경은 확실히 70년대 풍이다.

이 시에서 보이는 정서는 바로 그 70년대 풍이다. 가난과 촌스러움의 얼룩이 약간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게 아름답다. 잘 빚어진 매끄러운 시보다 약간은 빈 듯한 거친 시가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것은 짙은 삶의 페이소스 때문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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