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6대 대통령 선거의 의미는 남다르다.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정보화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또 정치적으로는 보스정치, 지역정치, 가신정치 등 나쁜 정치의 상징이었던 3김 정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치러지는 첫 선거이다. 따라서 새 천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시후보와 민주당 고어후보간에 벌어진 엎치락 뒤치락하는 위기를 보았다. 그런데도 거뜬히 수습되었다. 이를 두고 흔히들 '제도의 승리'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 제도가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춰 한나라당은 '나라다운 나라'라는 구호로 응답하고 있다. 즉 DJ정권의 실패를 고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은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로 정치는 물론 사회전반에 이르는 각종 틀을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둬 지금까지의 보수정권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라는 시대적 소명에는 견해를 같이 하면서 방법론에서는 정당마다 차이점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비슷해져 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처음에는 대기업 규제에 관해서는 한나라당은 푸는 쪽으로, 민주당은 현행 대로다. 집값 안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은 시장기능에, 민주당은 정부개입으로. 북핵 해결책으로 한나라당은 현금지원은 금지, 민주당은 모든 교류 지속 등으로 차별화가 이뤄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복지, 안보등에서 양당의 정책 차별화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한가지 예로 모든 정책의 골간이 되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 성향에서 여야 모두 중도를 택하고 있다. 물론 색깔론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런데도 보수로 평가받던 한나라당은 '진보냐 보수냐 하고 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중도로 돌아섰고, 진보로 평가받던 민주당은 '진보노선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다'고 중도로 돌아섰다.
유럽국가처럼 평등의 진보가치와 자유의 보수가치가 상호보완적 기능을 하면 좋을 텐데, 그것이 표 때문에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예 영국 노동당처럼 제3의 길을 가든지. 보수철학도 진보철학도 없고 오직 표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이것은 분명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형태는 아닌 것 같다.
정책의 차별화가 전제되어야 정책선거가 이뤄질 것 아닌가. 정책선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지역감정을 포함한 이미지 선거에다 감성적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들 우리나라서는 보수가 70%이므로 진보필패론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각종 조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는 보수48% 진보 25%로 나왔으나 97년 대선때 김대중 캠프에서 일했던 이영작 전 교수는 오래전부터 진보 49.1%에 보수32.9%로 역전되어 있다고 강변한다. 양 진영이 중도로 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도 바뀌어야 한다. 지역대결 구조의 타파를 외치면서도 자신은 지역구도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KBS가 조사한 결과를보면 '바람직한 대통령의 선정기준은?'하면 47.7%가 정책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실제 투표의 기준은?'하고 물었을 때 36.8%가 지역이라고 답했다. 이를 봐도 판단과 실제 행동이 다른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는 누구의 고향'이라든지 '호남서는 누가''영남서는 누가' 몇%씩 나왔다면서 은근히 지역감정을 공개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여전히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연(緣)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이중성에서 온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국민도 정치인도 진실 앞에 솔직 하자. 이중성을 버리자. 그래야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래야 개혁도 할 수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유태인 격언에 "한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다"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이러하니 정치인이야 일단 접어두더라도 국민만이라도 우선 이중성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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