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여풍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햄릿의 독백이지만 과연 그럴까? 서양의 경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선조 유교사회에서 남자 앞에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요조숙녀들마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생규장전'에 등장하는 '최랑'의 남성보다 강인하고 적극적인 내면적인 모습은 그 한 예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 학자가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하고 야망이 높으며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그 현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두드러져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등 여성 파워가 드세지는 건 세계적인 추세이며, 이른바 그 '여풍(女風)'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의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약진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활기를 보이고 있어, 이젠 서울대 의과대학 신입생 절반 이상이 여학생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예 중의 하나로 보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여성 파워가 드세지는 모습은 법조계에도 두드러지고 있다. 법무부가 3일 발표한 올해 사법시험 2차 합격자 가운데 수석·최고령·최연소 합격을 모두 여성이 휩쓸었다. 전체 합격자(999명)의 23.92%인 239명이 여성으로, 지난해의 17.5%(173명)보다도 크게 늘어나 역대 최고의 비율을 기록 했다.

이들 중 수석 합격자인 서울대 법학과 4학년 이미선(23)씨는 여성의 장점인 섬세함을 살려 공정하게 세상을 보고 잘잘못을 가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비뇨기과에도 여의사들이 점차 늘어나는 모양이다.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에 따르면 여성 레지던트는 10%가 넘고, 내년 1월 전문의 시험을 앞둔 4년차만도 8명에 이른다.

3년 전 서울에서 첫 여성 전문의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내년부터는 10명으로 늘어나는 등 이런 추세는 계속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일본엔 이미 100명을 넘어섰고, 미국의 경우 레지던트의 절반이 여성인 주도 있다지만, 세상이 바뀐 건 분명하다.

▲21세기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중시되고, 일원주의보다는 다원주의가 받아들여질 것이라 한다. 이 때문에 감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여성의 탁월한 감각이 빛을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이미 신라시대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선덕여왕과 명장 김유신으로 하여금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져나갔던 진덕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지금처럼 혼탁한 시대에 모성의 본질을 발휘할 수 있는 여성들의 약진에 기대되는 바도 적지 않다. 바야흐로 '약남강여(弱男强女)'의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는 건 아닐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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