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이 급증하고 있으나 사회적 지원 장치가 없다. 그때문에 이들은 도시 극빈층으로 급속히 편입되고, 가정은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재근씨의 경우 = 정재근(52.대구 수성4가)씨는 작년 봄 당뇨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잃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생활 기반도 덩달아 무너졌다. 정씨는 일을 못하게 되니 2천만원짜리 전세집을 비워 주고 800만원짜리 단칸방으로 이사해야 했다.
자전거수리점을 할 때는 월 100만원 가까이 벌었지만 지금은 정부가 주는 월 30만원으로 밥만 겨우 챙겨 먹고 지내는 중이다.
"중도에 시력 잃은 사람은 다 못산답디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시각장애인 불러서 교육 시켜주는 사람도 없고 설사 시켜준다 해도 그곳까지 가는 게 불가능 해. 그냥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지".
그는 갑자기 시력을 잃은 뒤 지팡이 사용법도 몰라 아내가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조차 못한다고 했다. 정씨의 '눈' 역할을 해야 하니 아내까지 집안에 묶여 버린 것.
정씨는 그래도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 한다고 했다. "이젠 밖으로 부지런히 나가려고 합니다. 암흑의 세계에 적응을 해야지요. 연료비.반찬값 주고나면 없어지는 30만원에 매달려 사는 인생이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씨는 오히려 만성 천식에 시달리는 아내를 걱정했다.
◇이영조씨의 경우 = 기계 제조업체에 다니던 이영조(51.대구 신암동)씨는 2000년 심장수술 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의 실명과 함께그 가정도 캄캄해졌다.
2천만원 주고 전세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쫓겨나다시피 나오는 바람에 무려 1천400만원의 빚까지 생겼다.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만도 57만여원.
"빚을 안지려고 해도 전세가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생보자 지정을 못받으니 엄두를 못냅니다.생활능력을 잃어버린 시각장애인 가장에다 빚만 수북하지만 이 캄캄한 길에서 벗어날 방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부인 김명선(48)씨는 남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생활비가 없어 파출부라도 나가야 하지만 2년 전 수술 후유증으로 실명한 남편은 자신의 도움 없이는 방 문턱도 마음놓고 못넘기때문.
택시.의료기 회사에 다니는 딸들은 얼마 안되는 봉급을 아버지가 진 빚 이자 갚는데 털어넣고 있다. 그때문에 이씨 가족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부인은 딸이 둘 있다고 해서 생활보호를 안해 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원망했다. "얘들도 돈을 모아 시집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부모 빚이나 갚고 있을 순 없잖습니까? 얘들 시집가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합니다".
김씨는 요즘 남편에게 자주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이혼을 해서 생보자 지정을 받도록 할까 생각도 했었거든요. 그러나 성찮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김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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