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내버스 서비스 실종 현장

지난 1일 요금 인상 이후에도 대구 시내버스의 서비스는 여전히 최악이다. 시민들의 불신은 끝모를 정도로 깊어졌지만 불탈법 운행은 시내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불탈법 현장 = 지난 2일 오후 2시30분쯤 청기와주유소 앞 승강장. 30분 사이에 ㅇ여객 508번, ㅅ여객 518번, ㄷ교통 601번 등 좌석버스 3대가 이 승강장을 거치지 않고 고가차도로 올라 하양쪽으로 달렸다.

승강장에서 만난 김주현(25.효목동)씨는 "고가차도로 가면 네거리를 지나지 않아도 돼 신호대기 시간 2분 정도를 단축하려고 운전기사들이 이 승강장을 피해 간다"고 했다. 인근 주민들은 하양 방면 5개 노선버스들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운행돼 버스 타기가 어렵다고 했다.

같은날 오전 6시쯤 섬유회관 앞 승강장. 30여분째 ㅅ교통 407번 좌석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김성윤(64.비산동)씨는 버스가 승강장에서30여m 떨어진 곳에 잠깐 선 뒤 가버려 두 번이나 놓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출발하려고 대부분의 버스들이 승강장에서 20여m 떨어진ㅎ의류점 앞에 정차한다는 것.

지난달 29일 오후 7시34분쯤 범물동 공동차고지엔 242번 버스 2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또 배차시간과는 달리 앞 차보다 뒷차가 먼저출발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운전기사들은 "출퇴근 시간대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운전기사에게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 뒷차가 먼저 출발하는 경우가종종 있다"고 했다.

◇운전기사 부족이 불친절 부른다 = 버스조합에 따르면 주휴 근무 등을 고려할 때 시내버스 한 대당 2.44명의 운전기사가 있어야 적정하다.지난 8월 말 현재 운행되는 대구 시내버스는 30개 업체의 1천719대. 그렇다면 운전기사가 4천194명은 있어야 정상적인 운행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실제 근무 인원은 3천877명에 불과하다. 버스 대당 2.25명에 그치고 있는 것. 이때문에 기사들은 하루 2교대로 10시간씩 운전하는 정상적인 근무 외에도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른바 '곱배기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밤 11시30분까지 근무한 기사가 오전 5시30분 첫 차를 배정받게 되면 잠 잘 시간이 2~3시간밖에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대구 버스노동자협의회 최현귀 사무국장은 "적정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은 기사들의 피로를 누적시켜 사고까지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경력 15년인 동신여객 김경덕(46) 기사는 "피로가 쌓이다 보면 승객들에게 인사 한번 건네기 어렵다"며, "버스업체들은 수익금에만 관심 둘 것이 아니라 승객 편의와 운전기사 건강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엉터리 운행시간표 = 운전기사들은 불합리한 운행시간표가 서비스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대곡동 616번 버스 종점에서 만난 신일여객 박재운(45) 기사는 "한가한 낮시간이나 승객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이나 운행 시간이 똑같이 돼 있어 낮엔 운행 시간이 남고 출퇴근 때는 시간이 모자라는 악순환이 몇년째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총 11대가 하루 6회씩 운행하는 616번 버스 경우 대곡동∼성당시장∼신암아파트∼앞산공원∼대곡동 구간 운행시간이 새벽이나 출퇴근시간대나 꼭같이 2시간35분으로 돼 있어 낮엔 5~10분 정도 시간이 남는 반면 출퇴근 때는 20분 일찍 출발해도 5, 6분 모자란다는 것.

동료 한성웅(44) 기사는 "출퇴근 시간 운행 땐 종점에 오자마자 식사도 못한 채 되돌아 나가기 일쑤"라며 "이 시간대에는 운행시간에 맞추려면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등 법규 위반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경력 15년이라는 송모(47) 기사는 "버스업체들은 수익금이 적은 기사에 대해서는 급여.차량배정 등에서 갖가지 제약을 가한다"며, 그때문에 배차 시간표를 어기더라도 출퇴근시간 때 운행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려는 기사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첫차.막차 이래서 문제 = 운전기사들은 또 해당 노선 운행 후 종점에 버스를 세워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소속회사 차고지까지 버스를 몰아다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문에 종점∼차고지 사이가 먼 경우 시간을 앞당겨 막차 운행 중단하고 첫차도 시간을 늦춰 운행하게 된다는 것.

우진교통 제갈성식(39) 기사는 "성서 차고지에서 하양 대구대 종점까지 차를 이동시켜야 해 이 일에만 최소 50여분을 소비해야 한다"며, "곱배기근무에 시달리다 보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첫차 시간을 못지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과중한 일 부담으로 지치다 보면 친절 서비스가 쉽잖은 게 현실입니다". 시내버스 운전 6년째인 서순교(45.사진.대구 대명4동)씨는그러나 "승객들에게 기분 좋은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어하는 게 운전기사들의 속내라는 것은 알아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서씨가 보는 시내버스의 문제점은 두 가지. 하나는 승강장 주변의 불법 주정차이다. 이때문에 무질서한 운행이 유발된다는 것. 또 하나는 현실을 무시한 운행시간표가 과속.난폭 운전과 배차시간 위반을 부른다는 것이다.

한산한 낮이나 길이 막히는 출퇴근 시간대나 운행시간이 꼭같이 돼 있는 지금의 운행시간표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것. 서씨는 "운행 시간에 쫓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웬만한 신호는 무시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서씨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는 승객들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며, 운전기사와 승객이 합심해 타고 싶은 시내버스를 가꿔가자고 했다.

안상호기자 shah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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