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민의 지방분권 요청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 정부에서도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약속하였지만 생색에만 그쳤다. 그래서 전국 지역 지식인들이 지난해 9월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난달 7일에는 전국 규모의 '지방분권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지방 자치단체에 결정권을, 세원을, 인재를 주어야 한다는 주창 아래 지방 살리기 3대 입법 및 지방분권 10대 의제를 내걸었다. 또 영·호남 8개 시·도지사들도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자치단체로의 이양' 등 5개항의 대선공약을 각 당 후보에 건의하였다.
이 요청에 호응하듯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모두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원칙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이 후보는 '지방분권특별법'과 '지역균형발전법'의 제정을 통해 국가와 지방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지방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등 지역기반 시설의 확충에 필요한 정책, 사업시행, 재원 확보 등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반면 노 후보는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여 20년 장기계획을 입안, 각 지자체에 입법권과 재정권, 인사조직권을 확대 부여해 미국 연방 수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후보가 지방분권을 위해 재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단기적인 실현의 면모가 엿보이는데 반하여 노 후보는 지자체의 각 권한을 고루 확대하는 방안으로 장기적인 실현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파악된다.
행정부처의 지방이전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노 후보는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 중심지로서의 기능은 서울에 두되, 청와대와 국회 등을 옮겨 인구 50만 규모의 행정수도를 조성, 지방분권을 가속화한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한다. 행정수도 이전에는 약 40조원의 비용이 소요되므로 차기 정부의 재정 우선 순위 등을 고려해야 하고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든다.
대신 이 후보는 대전을 과학기술수도로, 충남을 교육특구로 지정하는 등 기능별로 지역 특성을 살린다는 현실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 가능한 정부기관의 이전을 추진하고 법인세 등의 세제 혜택을 통해 대기업의 본사, 은행 등 민간중추관리기관의 지방이전을 강력히 추진한다고 한다.
노 후보의 이 부분 공약은 재정면에서 실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분권실현에 소요되는 비용 외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또 행정수도의 이전에 반대한 정몽준 대표와의 협력을 살펴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노 후보의 지방분권 추진은 장기적인 안목에 기초하고 있어 그 우려는 다소 줄어든다각 지역의 기능별 개발이란 이 후보의 공약도 자칫 허구일 수 있다. 각 지역에 공통된 기능이 존재할 때는 실현이 어렵지 않겠는가하는 우려다. 또 세제 혜택을 받으려고 민간기업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할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밖에 이 후보는 부산 신발산업, 대구 섬유산업, 광주 광(光)산업 등 광역권별로 핵심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노 후보도 지방대학에 지식중심센터의 기반을 제공하고 국가 예산 투입을 통한 경쟁력 있는 산학연프로젝트를 창출, 지방대를 살린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 후보의 이런 공약은 사양산업으로 지목되어 퇴출되어가는 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공약이 될 수 있다. 노 후보의 20여개 서울대 수준의 지방대학 육성도 지방대학이 지금 당장 생존문제에 직면한 만큼 현실성에 있어서 의문이다.
두 후보의 공약을 뜯어보면 지방분권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지방에 어떤 결정권을 줄 것이며, 지방세 확충 방안은 무엇이며, 지방 인재를 어떻게 육성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찾기 어렵다.
두 후보가 기왕에 개헌 논의를 한다면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지도 않은 중앙권력의 분배를 공약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민의 의견이 수렴된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을 공약해야 할 것이다. 차기, 차차기에는 지방을 경영한 지도자 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을 기대해보는 것도 혼자 만의 망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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