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막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나 보다. 고향 마을 뒷산 자락의 묵밭에 뽕나무를 심으려던 나는 삽날에 부딪친 부드러운 쇠소리와 함께 청동그릇 수십벌을 건져냈었다.
골동품이란 말조차 설었던 그 시절, 온 마을 사람들은 나더러 금그릇을 캐내 횡재했다며 입소문을 냈고그것은 삽시간에 번져 박물관 직원들이 찾아들면서 그 보화(?)는 자연스레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경주박물관에 가면 수수하되 불변의빛을 지닌 통일신라기의 그 청동그릇 몇점이 내 고향의 지명을 달고 나를 반긴다.
이렇듯 특별한 인연을 묻어둔 탓일까? 지난 가을 서울역사박물관에 이어 지방마다 테마박물관이 열린다는 소식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다. 박물관은 물론 공연장과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욕구의 반영이라 믿어진다.
또한 문화기반 시설을확충하려는 지방정부의 노력들은 일상적 삶에서 문화예술을 한결 가깝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안겨준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시민은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 증액이나 외형적인 시설 확충 그 이상의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양질의 문화향수는 하드웨어만으로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존의 시설물을 보다 유용하고 다기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장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 중심에 행정이 서 있다. 예술행정의 대가인 빌미르 교수의 지적처럼 예술은 정부를 외면할 만큼 행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행정은 예술가의 창조적 감성과 자율적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행정은 일반 행정직과 달리 미학적 소양과 예술학적식견을 갖춘 전문인력으로 충원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경우 '문화재연구담당'직을 제외한 여타의 문화예술 행정직제는 일반 행정조직과 조금도 다름없이 획일적으로 편성 운영되고 있다.
문화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내려는 행정의 발상 전환이 절실하다. 고객의 수요를 예견해 나가는 문화행정을 기대한다.
김정식 육군 3사관학교 교수·행정학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