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설화나 중국 문헌에 쥐가 둔갑해 사람 행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사례로 '쥐 인간'을 주제로 삼거나, 입센의 작품에 '쥐 아가씨'가 있는 경우만 보더라도 쥐의 의인화 전통은 이 지구촌 곳곳에 있어 왔다. 하지만 쥐는 곡식을 축내고 가구를 갉아 망치며 병이나 옮기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반감을 주는 존재로 인식돼 왔었다. 부라우닝의 시 '종과 석류'와 엘리어트의 '화교'에는 쥐가 죽음과 악의 상징으로 그려져 있고,한용운의 '쥐'엔 '작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라는 묘사가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쥐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런 우리에게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은 레밍(들쥐)과 같다"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올해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한국 기업들은 들쥐떼 근성을 갖고 있다"고 '들쥐론'을 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한편 쥐는 어떤 짐승보다도 인체를 대신하는 생체 대행물로 각종 실험에 가장 많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쥐와 인간의 유전자가 99%나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외신이 보인다. BBC와 CNN 등은 쥐와 인간의 차이는 전체 유전자 3만여개 가운데 고작 1%에 지나지 않는 300여개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영국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해 세계적인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 최신호(5일자)에 발표된 생쥐 게놈 지도 공개에서 앨런 부래들리 교수는 "쥐와 인간의 유전자는 최소 80%가 완전히 일치하며 99%가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팀은 특히 생쥐가 질병 관련 유전자의 90%를 인간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나 암이나 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와 노화 연구에 획기적인 성과가 예상된다고도 했듯이 기대되는 바 적지 않다. 쥐는 생리구조나 유전자가 사람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바지하는 셈이다. 그러나 앨런 브래들리 교수가 말한 "유전학적 유사성만 고려하면 인간을 '꼬리 없는 쥐'로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는 대목은 오늘의 세태에 비추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중략〉…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리가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고,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가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쥐가 되어 가겠지요'. 바리톤 박영국이 즐겨 부르는 가곡 '쥐'(김광림 시, 변훈 곡)가 새삼스러운 건 '왜'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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