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초기의 선수들은 느슨한 일정에 힘입어 시즌 도중 술을 마시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자신의 관리에 철저한 선수들도 있었다. 투수 이선희는 동료들과 어울리긴 했으나 술이 약해 즐기지는 않은 '성실파'에 속한다. 하지만 이선희도 혀를 내두른 최고의 성실파는 단연 포수 이만수였다.
80년대를 대표하는 강타자 이만수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지독한 연습으로 더 유명했다. 해태의 김봉연, OB의 김우열 등 초기의 홈런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그들의 명성을 뛰어넘었으며 지금까지 국내 타자 중 수위타자, 홈런왕, 타점왕 등 타격 부문의 노른 자위를 싹슬이한'트리플 크라운'의 유일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삼성 야구팬들은 물론 전국의 야구팬들로부터 절대적 인기를 얻었으며 은퇴한 지 한참 지난 요즘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82년 시즌 어느날, 광주 원정경기를 마친 후 숙소 바깥에서 누군가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죠. 밤늦은 시각이었는데 누군가 했더니 만수더군요.당시에는 밤늦게 연습하는 선수가 드물었습니다. 훈련에 빠져 있는 모습에 강한 자극을 받았죠".그와 배터리를 이뤘던 이선희 삼성 2군투수코치는 그 시절 이만수를 회상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만수는 교회, 가정, 야구 밖에 몰랐다.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것은 물론 야구에 방해되는 것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생활 태도는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으나 때론 동료애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특히 그의 유명한 '홈런 세리머니'는 상대 투수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홈런을 치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라 날뛰며 마음껏 기쁨을 표현하는그에 대해 상대 투수들은 약이 바짝 올라 위협구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은 대부분 그의 '홈런 세리머니'를 좋아했다. 그가 홈런을 치고 펄쩍펄쩍뛰면 관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구장이 떠나갈 듯 '이만수, 이만수'를 연호했다.
이렇듯 당시 선수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시즌 중 경기장에선 최선을 다하다가도 여가에 술을 마시는 선수들이 있었는가 하면 성실하게 연습에만 정진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술이 과해 선수 생명이 짧아진 선수도 있었다.
원년 한국시리즈 극적인 만루홈런의 주인공인 OB의 김유동은두주불사형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 일찍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예이다. 프로라곤 하지만 아마 분위기가 남아 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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