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들불처럼 번지는 '반미'

지난 7일 저녁 대구 중심가는 촛불 시위대로 메워졌다. 미군부대 앞 시위를 마친 노동자.농민.대학생 등 500여명은 오후 5시쯤부터 한 시간 동안 중앙파출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일대를 돌며 촛불 시가행진을 벌였다.

오후 7시쯤부터는 동성로 대구백화점 일대가 빨간 촛불들로 물결쳤다. 초를 받으려 미리부터 길게 줄섰던 500여명의 시민들은 "통일된 나라였다면, 힘 있는 나라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가슴을 떨며 불끈 쥔 주먹을 내질렀다.

의성군 금성면 김애자(38.여)씨는 아들(11)을 데리고 일부러 멀리서 촛불시위에 동참하러 왔다며 "우리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더라도 불구경하듯 보고 있겠느냐"고 분노했다. 한 시민은 대통령 후보에게 주려고 갖고 나왔다는 돼지저금통 성금을 "여기 내는 게 맞을 것 같다"며 대책위 모금함에 두고 갔다.

전교생이 34명에 불과한 칠곡 다부초교 4년생 9명은 연필로 비뚤비뚤 "미국은 물러가라"고 쓴 글들을 촛불시위 때 전달했다. "미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인하고도 무죄가 돼서는 안된다"는 조재현(26.대구 비산동)씨는 쇼핑 나왔다가 동참하게 됐다고 했고, 최지은(21.대구대3년)씨는 "친지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촛불시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효순이 미선이의 영정이 설치된 대구백화점 앞 분수대 주변을 도는 것으로 이날 촛불시위를 마무리했다. 같은 날 전국적으로는 34개 도시에서 동시에 촛불시위가 열렸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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