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없어져야 할 공모전(하)

서양미술사에서 공모전과 관련해 가장 극적인 장면. 1863년 마네(프랑스)는 요즘 어린 학생들이라도 본 적이 있는 걸작 '풀밭위의 식사'를 공모전에 내놓았으나 보기좋게 낙방했다. 그후 젊은 작가들이 합심해 관(官)에서 주도하는 전시회에 작품을 내지 않고 자기네끼리 전시회를 열었다. '앙데팡당(Independent)'전의 시작이었다.

그당시 낙선자 명단을 살펴보면 공모전의 맹점을 단번에 꿰뚫을 수 있다. 드가 피사로 세잔 모네 르누아르 로트렉 마티스…. 공모전 입상자들의 이름은 금방 잊혀졌지만 낙선자들은 아직까지 이름을 빛내고 있다. 예술의 생명력은 작가의 개성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국전에 반발해 낙선자 전시회 또는 앙데팡당 전이 여러차례 열렸다. 젊은 미술인들은 수시로 국전 자체를 부정하는 반국전 운동과 국전 심사에 대한 불만을 집단행동으로 표출하곤 했다.

한 원로작가의 얘기.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만 해도 정말 끼리 끼리 해먹었어요. 서울대·홍익대로 나눠 심사를 하자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왔고, 한 심사위원의 부인·조카·제자가 한꺼번에 특선을 받는 일도 있었죠".

국내 미술인들은 잘 잊어먹는 모양이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지난해 경찰은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입상비리를 파헤쳐 미술인 25명을 입건했다. 경찰이 밝힌 적발유형을 보면 △심사와 관련된 금품수수 △낙선작을 입선작으로 둔갑시킴 △대필한 작품으로 입상시킴 △심사위원과 출품작가 사이의 알선 △인맥·학맥에 얽힌 비리 등이다. 50년전과 크게 다를바 없지 않는가.

국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한 서예가의 얘기. "경찰수사라는 폭풍이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심사과정이 크게 달라진게 없더군요. 유명서예가인 스승 글씨를 그대로 베낀 100명 가까운 제자들이 버젓이 출품해놓고 입상을 바라고 있지 않나…".

무슨 이유로 이런 공모전이 아직도 각광받고 있는걸까. 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신간 '미술본색'에는 재밌는 얘기가 나온다.

"족보조차 없는 공모전이라 해도 이름만 그럴듯 하다면 손해볼 것 없다. 미술계 밖의 사람들은 거창한 제목만 보고 그대가 거창한 작가인 줄 알 것이다···(중략) 예전부터 행해졌던 갖가지 노하우를 참작하여 심사위원을 구워삶고 경찰의 눈을 피하라. 그러면 커다란 상을 타고 싶으면 커다란 상을 타고, 조그만 상을 타고 싶으면 조그만 상을 탈 것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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