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용한 한의사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진맥(診脈)만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무면허 돌팔이들이 환자를 유혹하기 위해 맥(脈)만 본다고 하거나 환자를 직접 보지도 않고 전화 상담을 통해 약을 지어 준다고 하는 소문을 간혹 듣는다.
한의학의 진단은 크게 망진(望診), 문진(聞診), 문진(問診), 절진(切診) 등으로 구분된다. 망진은 사람의 생김새, 얼굴과 피부의 색깔 등을 관찰해 진단하는 방법이다. 문(聞)진은 숨소리, 말소리 등을 들어서, 문(問)진은 환자로부터 증상과 가족관계, 병력, 음식의 기호, 성격 등을 물어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절진은 맥을 짚어보는 맥진과 배를 만져보는 복진(腹診)으로 나눠진다.
한편 '동의보감'은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의 문장을 예로 들어 망진, 즉 보아서 모든 병을 알 수 있는 경지를 가장 높이 평가해 이를 신의(神醫)라고 불렀다. 다음 순으로 들어서 아는 의사('성의(聖醫)'), 물어서 아는 의사('공의(工醫)'), 끝으로 환자의 몸을 만져서 아는 의사('교의(巧醫)') 등이다. 이대로라면 맥을 잘 보는 사람도 결국 만져서 병을 아는 의사인 '교의'에 해당돼 가장 등급이 낮은 의사가 되는 셈이다.
이왕에 한의사가 되었으면 허준이나 이제마보다 뛰어난 '신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인명을 다루는 의사가 서투른 솜씨로 신의를 흉내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신의'는 고사하고 '교의'도 되기 어려운 요즘 어찌 맥만 잡고 모든 병을 알 수 있겠는가?
훌륭한 의사란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한치의 실수 없이 정확한 진단을 내려 적절한 치료방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한의학에서는 '사진합참(四診合參)', 즉 네 가지 진단방법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진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평소 진찰해 온 환자의 경우 약을 먹고 난 뒤의 상태나 평소와 다른 맥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맥만 잡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맥만 짚는다는 사람에게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약 처방을 받으면 병 치료는커녕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마음으로 병을 아는 의사가 가장 홀륭한 '신의'라고 했다. 요즘에는 세태가 달라져 환자를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는 의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집 가까운 의원을 단골로 만들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신의'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산대 한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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