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48년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채택된 날이다. 이 선언이 인류의 현대사에 얼마나 중요한 공헌을 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오대양 육대주의 지구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사는 각종 인종들이 피부와 전통, 종교와 윤리가 다르지만, 그들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기본적 인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함께 선언한 것은 인류의 크나큰 자각이다.
총 33조로 구성된 이 인권선언이 우리나라의 법전에도 한글로 실려 '한국법'의 일부가 되어 있듯이, 일견 너무 당연하고 자명하면서도 그 한 조문 조문은 인류의 복음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하버드대학의 메리 글랜든교수가 분석한 책을 읽어보면, 위원장 일리노 루즈벨트여사의 현명한 주도 아래 수십명의 세계 지성인들이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제정한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중국인 대표가 해박한 지식과 철학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에 동아시아의 소리도 적극 대변되었다는 얘기다.
다른 한편,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지상에는 아직 많은 인간들이 인권유린과 탄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치열하게 인권을 쟁취하려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98년, 그러니까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에 유엔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 선언이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내 좌절되었고, 지금도 하나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계인간책임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esponsibilities)이 그것이다.
발안자는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한스 큉과 전 수상 헬무트 슈미트를 비롯하여 세계의 저명 지식인들이다. 총 19조로 구성된 이 선언문을 읽어보면, 인류가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의 내용을 깊이 함축하고 있다.
제1조는 "모든 인간은 성, 사회적 지위, 정치적 견해, 나이, 국적,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인간적 방법으로 대우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인간성에 대한 책임, 자연환경과 연대성에 대한 책임 등 종래 권리로만 생각했던 것을 책임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권리만 생각하면 점점 투쟁과 갈등을 부추기게 되고, 특히 서양에서는 권리과잉으로 불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소모가 자행되고 있다는 반성으로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잊혀진 언어 의무와 책임을 재발견하고 있다. 권리보다 의무와 책임의 윤리적 전통을 오랫동안 간직해온 동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서양의 반성이 너무나 당연하고 다행스런 것으로 들린다.
인간책임선언에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12개국 국가 원수급 인사들이 서명하였다. 또한 몇몇 한국 지식인들도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뜻깊다.
지금도 세계인류는 권리와 책임의 문제에 대해 복잡한 문제상황 속에 있다. 그래서 세계인간책임선언은 지성인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식적으로 유엔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책임선언의 채택으로 혹시 인권탄압이 정당화될까 하는 서방측 대표들의 오해가 주원인이라 한다. 수년전 슈미트 전 독일수상이 한국을 방문하여 이 문제에 대해 강연할 때 필자는 유엔에서의 좌절 이후 앞으로 전망이 어떠냐고 물어 본 바 있다.
그는 "인류의 자각은 느리다. 그러나 서서히 계몽되어 가리라 확신한다"고 인상적인 대답을 하였다.
오늘날 인권문제에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문제지역이 중국과 남북한이다. 동아시아의 오랜 의무와 책임의 전통 위에서 잘 소화되고 정립된 인권의 이론과 실천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것이 동아시아가 세계화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권리가 무르익으면 의무가 된다는 생각으로 성숙하기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성의 선함과 인류의 진보를 믿는 신념이 흔들려서는 아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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