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美 경제팀 '바꿔'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은 경기 상황에 따라 금리를 절묘하게 조절하기로 정평나 있다. 심할 경우에는 한해에 8차례나 금리를 조율하는 바람에 금리를 마치 악기처럼 다루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경망스럽다'며 야단을 맞을 노릇이지만 금리에 민감한 미국 정부와 국민은 그의 경제 악보 다루는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대통령보다 그의 말 한마디가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린스펀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린스펀의 한 마디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그가 깊은 신뢰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 생활고(苦)를 파악하기 위해 종종 세탁소에 들른다. 생활이 어려워지면 미국 국민들은 제일먼저 세탁물부터 맡기지 않고 손수 빨래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세탁소의 세탁물 양에 따라 체감 경기를 판단하고 그에 맞춰 금리를 조절한다는 그의 '세탁소 경기론'은 유명하다. 정확한 경제 지식에다 실물 경기 체험까지 겸했으니 그의 정책이 실패할 리 없다. 수차례의 경질설에도 불구하고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들의 믿음이 대단한 모양이다.

▲미국의 경제관료는 신뢰만 있으면 이처럼 수명이 길다. 그런데 경제 사정이 어지간히 나빴든지 백악관 경제팀이 도중하차했다. 부시 대통령은 폴 오닐 재무장관과 로런스 린지 경제수석보좌관을 전격 사임시키고 그 자리에 운송회사 사장인 존 스노와 골드만 삭스 전 회장인 스티븐 프리드먼을 임명했다.

클린턴 시절 '루빈 효과'를 일으키며 미국의 신경제를 이끌어 온 로버트 루빈같은 재무장관이 한번 더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할 것이다. 루빈은 퇴임후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하버드대 서머스 총장이 그를 새 이사로 영입했다.

▲미국 경제팀의 경질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실무형'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월가(街)에서 인재를 구하고 CEO(최고경영자)출신을 우대하니 이들이 세운 정책은 바로 현실 경제에 시차(時差)없이 침투된다. 미국경제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은 이같은 정책의 탄력성에 있다.

우리는 어떤가. 사흘이 멀다하고 바뀌는 경제관료들, 게다가 재계와 관계는 엄격히 구분돼 감히 넘볼수 없는 영역이다. 경제정책은 선악(善惡)을 따지기도 전에 여론을 수렴하고 조율하는데만 몇 달이 걸린다. 경제관료 선정에 '경제논리'가 없으면서 시장경제를 외치는 우리네 현실이 우습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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