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한(前漢)시대 효문제(孝文帝)는 제후들의 도움으로 황제의 지위에 올랐으나 그 정권은 아직 불안정했다. 이러한 때에 명신이었던 가의(賈誼)는 정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건의를 했다.
'앞에 가는 차가 뒤집히는 것은 뒤에서 따라가는 차에게 경계가 될 수 있습니다. 진(秦)나라는 오랫동안 계속되지 못하고 망했는데 망한 원인을 우리는 그 자국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국을 피해 가지 않으면 뒤에서 가는 차도 뒤집혀질 것입니다. 나라의 흥망이나 안정과 혼란의 관건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나라는 왜 단명으로 끝났는가. 그 원인이었던 진나라의 잘못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 알 수 있으므로 똑같은 잘못을 뒤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황제는 이 말을 듣고 국정의 쇄신에 노력하고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오랫동안 나라가 이어가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앞을 가는 사람이 범한 과오는 뒤에서 가는 사람에게는 귀중한 교훈이 된다. 역으로 그것을 알면서도 앞의 사람과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전철을 밟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전철을 밟지 않았다'라는 말보다 '전철을 밟는다'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아마도 자신이 직접 넘어져보지 않고는 그 넘어져서 당하는 고통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일지 모를 일이다.
'전철을 밟는다'는 말은 흔히 대형의 재해가 되풀이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대형재해는 천재나 인재를 불문하고 대단히 많은 교훈을 남긴다. 예를 들어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있을 경우 태풍 그 자체는 천재일지라도 그 후의 피해의 확대에는 인재의 면도 있어 '그 때에 이런 조치를 사전에 해 두었으면…' 혹은 '이것을 저렇게 대처했더라면…'하는 반성자료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너무도 무력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급하는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문제의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대처해서 개선을 도모해 나가는 것이 이 교훈에 부합하는 대처 방식일 것이다.그런데 '전철을 밟지 말라'는 이 교훈은 더 넓고 더 높은 가치의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또 적용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바로 국가의 경영에 거울로 삼아야 할 교훈일 수 있는 것이다.
소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집권 후 아무런 시행착오도 없이 훌륭하게 국정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직전의 문민정부를 닮아갔다. 문민정부가 '나라 바로 세우기 운동'이란 희한한 국정지표를 내걸었는데 국민의 정부도 이에 뒤질세라 전혀 내용이 공허한 '제2의 건국운동'이란 지표를 내걸었다. 그리고 철저히 제왕적 대통령의 위치를 견지한 것도 그대로 닮아갔다. 인사정책의 난맥상이나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의 부정과 부패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도 철저히 닮아갔다.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전 정권의 잘못된 수레바퀴의 자국을 피해서 국민이 바라는 올바른 방향으로 국정운영의 수레바퀴를 움직여간 것이 아니라 행여 앞차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벗어날까 경계하면서 앞차를 따라간 느낌이 든다. 철저하게 전철을 밟은 것이다.
지금 거리에는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다. 그곳에는 온갖 비방과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화려한 공약들이 모두 이루어진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선진국의 문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누가 당선된다고 할지라도 그 수많은 공약들이 대통령의 임기내에 모두 차질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공약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잘못된 전 정권의 전철만은 제발 다시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지도자를 뽑아야 할 선택의 시점에 와 있다. 또 차가 뒤집혀진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 대구시장.영광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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