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살 빼기 전염병'

중국의 '고기(古記)'에 '모모를 서시(西施)로 만들 수 있다'는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고대부터 몸매를 날씬하게 하고 얼굴을 성형하는 미용술이 발달했던 모양이다. 모모는 고대 중국 삼황(三皇)의 하나였던 황제의 아주 못생긴 넷째 비(妃)였으며, 서시는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의 애비로 예쁜 여자의 대명사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 '열녀 춘향 수절가'에 나오는 기생 낙춘, '옹단춘전'의 옥단 묘사 부분도 미용술을 재미있게 표현한 사례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부터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대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인의 기준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변해 왔다. 고대의 서양에서는 풍만하고 관능적인 여성이, 중세엔 날씬한 몸매와 자그마한 가슴이 미인의 표준이었다. 중국 당나라 땐 얼굴이 통통하고 몸과 발이 작아야 대접을 받았다. 우리 선조들은 보름달처럼 둥글고 흰 얼굴에 복숭아 같은 뺨, 작고 가는 눈과 앵두처럼 탐스러운 입술, 연적 같은 젖무덤을 갖춰야 미인의 반열에 올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비너스마저 저만큼 밀려나고, 말라깽이 몸을 최고로 치는 풍속이 날이 갈수록 속도가 붙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들은 다이어트 끝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살 빼기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비만이 전염병 수준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심각한 '지구적' 과제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정상 체중인 여성들마저 스스로 비만이라고 생각하는 '비만 망상증'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바람에 알량한 상혼이 판을 치는 세태다.

▲최근 12개의 다이어트 제품 판매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허위.과장 광고 시정 명령을 받았다. '한 달이면 7~8㎏ 감량', '앉아만 있어도 살이 빠진다'는 등의 표현을 객관적 근거 없이 썼기 때문이다. 적발된 업체 중엔 탤런트나 미스코리아 출신을 모델로 내세우면서 복용 효과를 본 것처럼 광고하거나 미국 특허 또는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은 양 광고한 경우도 있다 한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들에 광고 중단과 법 위반 사실 공표를 명령했다지만 큰 문제다.

▲여성들의 필사적인 살 빼기는 남성의 시선, 자본의 논리, 미디어의 왜곡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그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알량한 상혼도 마찬가지로 극성이다. 아무튼 아름다움의 추구가 강박관념이 돼 몸을 속박하고 학대하는 '몸에 살고 몸에 죽는 몸 숭배' 풍토는 자제돼야 하지 않을까. 여성들의 '살 빼기 전염병'은 날로 극성인데, 정작 군살 빼기는커녕 뻥튀기가 극심해지는 우리 사회와 정치 현실을 보면 더욱 답답해지기만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