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네티즌 천국-(중)사회가 달라졌다

인터넷은 시민들의 생활을 대폭 바꾸고 시장 구조까지 변화시켜 놨다. 이진수(34.대구 신암동)씨는 책방에 가본 지 몇년 됐다. 인터넷 서점에 가면 책 정보도 많고 바로 주문해 10~20%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28.대구 도동)씨는 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9만원을 주고 유명브랜드 치마를 샀다. 가격이 시중보다 3만, 4만원 싼데다 버스 타고 시내까지 옷 사러 나갈 필요도 없어 좋다는 것. 이씨는 올 들어서만도 인터넷 쇼핑으로 지갑.운동화 등 5, 6개의 물건을 샀다.

해외 매장 전문 쇼핑자도 적잖다. 인터넷 해외 쇼핑을 대행하는 ㅇ쇼핑몰은 무려 56만여명의 회원을 끌어모으면서 올들어 배송.구매 대행만으로 100억원 정도를 벌었다. 지난해 이 쇼핑몰의 수익은 15억원에 불과했었다.

인터넷 쇼핑은 음식까지 해결해 준다. ㅇ쇼핑몰은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손질된 재료를 배달시켜 주는 주문형 식단 서비스로 월 1천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래엔 아예 차례상까지 통째 차려주는 쇼핑몰도 등장했다.인터넷을 이용해 영화.콘서트.뮤지컬.오페라 같은 각종 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이미 보편화됐고, 교육 및 자녀 양육 수단으로도 인터넷이 활용된다.

유치원.놀이방 자녀들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화상 반상회를 열거나 밖에서 집안을 살필 수 있는 홈뷰어서비스 등도 KT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마우스만 휘두르면 분양 중인 아파트 모델하우스, 주가 변동, 펀드 수익률 등을 알 수 있어 재태크 형태도 바뀌었다.

소비자 권리찾기도 인터넷 덕을 본다. 공정거래위의 '사이버 소비자협의회'는 소비자 불만을 생산업체에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특정 제품 소감을 올리는 사이트인 '엔터크' 등은 이용자 구매 성향을 좌우할 정도로 큰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활에 몰고온 변화 중 더 주목 받는 것은 기존 사회울타리를 허무는 '넷 패밀리'가 등장한 것이다. 지리적.시간적 제한을 뛰어 넘어 세계 전체적으로 하나의 동호회가 묶일 정도인 것. 대학 3년생인 김병락(25.영천)씨는 "고교 동창회가 열려도 참가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며 "젊은층으로 내려갈수록 위계 질서가 잡힌 딱딱한 동창회보다 취미 활동 인터넷 동호회를 더 선호한다"고 했다.

김우용(30.대구 지산동)씨는 최근 영화 감상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했다. 신작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는 영화광이어서 관련 정보를 함께 나누고 영화도 같이 볼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

가입비가 없고 매달 한번 신작 영화 1편을 선정해 함께 감상토록 돼 있으나, 그마저 동참 여부가 자유롭다는 점이 좋더라고 했다. 넷 패밀리는 지구촌 누구와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지만 공동체 가입을 강요당하거나 활동을 게을리 한다고 비난받지도 않는 것이다. 공동의 관심 아래 자발적으로 모인 만큼 누구보다도 의사 소통도 잘 된다.

직장인 이성우(34.대구 복현동)씨는 영어 인터넷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영어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혼자 공부하는 것도 너무 막막해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한 것. 이씨는 영어 회화 스터디 그룹 조직 계획을 짜고 있으며 영어로 e메일을 주고 받을 회원 물색에 바쁘다.

박성진(34.경산)씨는 최근 대학 동아리 선후배.동기들을 인터넷에서 만났다. 몇년 전 자신이 속해 있던 대학 동아리가 해체되면서 헤어졌지만 후배 중 한 사람이 인터넷에 동아리 동호회를 개설한 덕분에 요즘은 매일 한번씩 들러 안부를 나누고 있다.현재 국내 사이트에 개설된 동호회는 무려 600만개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음.프리챌 등 10대 사이트에 등록된 동호회만 560만개에 이르고 100만개 이상의 동호회를 확보한 사이트도 4개에 이른다. '야후'에만 1천개가 넘는 등 종교 사이트도 곳곳에 만들어져 의견을 주고 받거나 동화상을 통해 교리 강좌를 듣고 외국 파견 선교사들에게 선교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사이트는 스포츠.레저, 특정 직업 준비 등 분야를 중심으로 하루에만도 2만여개가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인터넷 업계는 전했다.

이런 넷연(Net緣)은 학연.지연.혈연 등 우리의 오래된 네트워크를 허물고 있다. 뜻을 같이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연스레 패밀리를 형성함으로써 학연.지연.혈연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넷 패밀리(Net Family)는 가정.학교 중심으로 형성돼 왔던 전통적인 가족.친구와는 또다른 가족 개념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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