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14)83~84이색선수

삼성이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뒀던 83년 시즌 약체팀 삼미 슈퍼스타즈에 '괴물 너구리'가 입단, 팀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재일교포 장명부가 바로 주인공으로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그는 82년 시즌 허리 부상으로 부진하자 이듬해 삼미의 유니폼을 입었다. 장명부는 83년 시즌 특유의 능구렁이 투구로 순진한 국내 타자들을 농락, 전대 미문의 30승을 올리며 하위권이었던 팀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일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그는 그러나 84년 시즌, 코치를 겸한 마무리 투수로 뛰면서 13승20패 방어율 3.30의 성적에 머무르고 만다마운드에서 활약이 부진한 대신 장명부는 코치로서 능력을 발휘해 당시 박정후, 정성만 등 투수들의 기량을 향상시켰다. 장명부는 만년 하위팀으로 번번이 강팀들의 기록 제물이 되는 등 자존심을 잃었던 팀의 체면을 한때나마 세웠다. 해태의 방수원도 이색적인 투수였다. 그는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프로야구 첫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그보다 뛰어난 투수들이 적지 않았지만 투수로서 영예로운 첫 기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의 영광을 위해 치욕의 제물이 된 팀은 아니나 다를까, 삼미였다.

84년 5월5일 어린이날 광주 무등야구장의 마운드에 오른 방수원은 절묘한 커브 컨트롤을 앞세우며 상대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 이전까지 2년간 9승12패4세이브(방어율 4.31)의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던 방수원은 이날 신들린 듯 공을 뿌려댔다. '도깨비 팀'으로 불렸던 삼미는 설마 하면서도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7회초 삼미의 4번타자 금광옥이 선두로 나와 2루수쪽 타구를 날렸다. 깨끗하게 맞은 타구는 안타임이 분명해 보였으나 해태 2루수 차영화가 다이빙 캐치, 삼미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결국 방수원이 9회초 삼미의 슬러거 김진우를 삼진으로 잡으며 대기록을 세웠다. 방수원은 이날 볼넷 3개만을 내주며 한국 프로야구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84년 시즌 24경기에 등판했던 방수원은 그해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운 이날 경기가 자신의 유일한 승리였다. 방수원의 그 해 성적은 1승7패에 불과했다 .

84년 시즌 OB의 김성근 감독을 보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지휘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게릴라식 마운드 운영과 투수 조련, 끈기있는 승부 근성으로 올 시즌 LG의 돌풍을 주도한 그는 당시에도 판에 박은 듯 팀을 이끌었다. 에이스 박철순이 장기 결장하고 뚜렷한 강타자가 없는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 해 계형철을 11승4패의 에이스로 성장시켰는가 하면 무명의 신인 윤석환을 구원전문 투수로 발굴, 최우수 신인 및 최우수 구원투수로 선정되게 했다. 별 특징이 없던 투수 장호연도 마운드의 게릴라로 활용하면서 방어율 1위에 오르게 했다. OB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김 감독의 용병술로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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