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한 이모(30·대구 방촌동)씨는 한때 독서광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20대 후반 이후엔 책을 오래 붙잡고 있지 못하는 난독증(難讀症)에 걸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인터넷 검색 탓.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얻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책이 지루하고 재미 없어졌다고 했다.
대구 학원서림 홍일석 부장은 "최근 몇년 사이 서점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이 줄었고, 오는 젊은이도 고전류보다는 환타지 소설 같은 알맹이 없는 책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인터넷에 매몰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올바른 독서 습관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는 것.
인터넷시대 이후 불거진 또하나의 문제는 베끼기 문화가 판 치는 것. 검색 사이트에 '숙제'라는 단어만 입력하면 도와 줄 사이트들이 쏟아지고 그 중 좋은 것을 골라 짜깁기 하면 숙제가 끝나는 탓이다.
지난 10월 위덕대가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받은 독후감 1천10편 중 순수 창작품은 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을 정도이다. 대학에서는 이때문에 손으로 작성한 리포트 제출을 요구하는 교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채팅 등으로 인한 언어 파괴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우스울 때 사용하는 ㅋㅋㅋ나 ㅋㄷㅋㄷ, 안냐세요(안녕하세요) 냉텅텅(내용없음) 열라(매우) 등은 잘 알려진 것. 최근에는 '羅ⓡⓖ孝'(나 알지요) 같이 영어·한자·특수문자를 조합한 것까지 나돌고 있다. 대구대 국문과 이정복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언어파괴에 익숙해지면 실생활 언어 규범까지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넷에 의존하느라 사전을 찾지 않아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해내는 청소년들 역시 적잖다. 고교 1년생인 박지원(16·여·대구 대명동)양은 인터넷 사전에 익숙하다 보니 의미를 아는 단어도 철자는 쓰는데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채팅으로 인한 불륜, 음란물 홍수, 자살사이트 등장 등은 인터넷 시대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미 부상돼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회 문제 중에는 인터넷 빈부 격차가 그 못잖게 심각한 일로 지적돼 있다. 어느 영세민촌 어린이들의 경우가 이를 증언한다.
또래들은 'BnB'라는 컴퓨터 게임이 열중하지만 초교 5년생인 현우(11)에겐 이 게임이 낯설다. PC방에 가려 해도 영세민 아파트 가족에겐 1천원 남짓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정부에서 지난 2000년 저소득 가정 어린이들에게 컴퓨터를 나눠주긴 했으나 전용선을 깔 수 없기때문. 이웃에 사는 진영(10)양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게임을 모르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으니 둘은 틈만 나면 집 인근 복지관으로 찾아간다. 대구 월성복지관 경우 하루 최다 70~80명의 어린이들이 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이 복지관 이승희(33·여) 총무팀장은 "소득 격차가 정보 격차로 이어져 가난한 사람들의 설 땅이 더 좁아졌다"고 우려했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인터넷 이용률이 높아 정보화 시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되는 문제점은 정부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정보통신부의 '2002 한국 인터넷 백서'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률이 월 가구소득 250만원 이상은 70.4%인 반면 150만~250만원 61%, 150만원 미만은 36.8%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넷맹은 사회 활동이 어렵게 됐지만 인터넷 이용 인구의 연령별 불균형도 심각하다. 이때문에 근래엔 노인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배우기 열풍이 불어, 대구 동구청이 2000년 12월부터 실시 중인 노인 교육반은 연일 만원이다.
20명씩 반을 만들어 3주 동안 인터넷 기초를 가르치는 이 과정의 지금까지 이수자는 520여명. 지난달 중급 교육을 이수한 우석현(70·대구 효목동) 할아버지는 "인터넷을 모르다보니 더 소외되는 것 같아 교육 받기로 했었다"며, "지금은 전자 신문도 보고 손자들과 메일도 주고 받는다"고 했다.
'인터넷 계급'이 갈수록 선명해지자 '다음'은 하인·평민·귀족·왕 등 4단계로 구분한 뒤 여러가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인터넷 계급을 알아볼 수 있는 진단 코너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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