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마을-조리책 음식디미방

두들마을 출신 작가 이문열씨는 소설 '선택'에서 400년전 한 여인을 되살려 현대를 살아가는 딸·아내·어머니·할머니 등에게 자신의 선택을 이야기하고 있다.이문열씨는 당시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의 드센 논쟁을 감당하면서도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속에서 발굴하려 했다"며 역사속 여인의 입과 모음살이를 통해 현대여성들이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작가가 수백년을 뛰어넘어 되살렸던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安東張氏). 정부인의 본명은 최근 안동대 배영동(민속학과) 교수에 의해 장계향(張桂香·1598~1680)으로 밝혀졌다.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나 19세되던 1616년 아버지 장흥효의 제자였던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재취로 출가해 두들마을 사람이 됐다.

지난 99년 11월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 전만해도 정부인의 존재는 그저 평범했던 여성으로 묻혀있었으나 이문열을 통해 되살아난 그녀는 시(詩)·서(書)·화(畵)에 능했을 뿐 아니라 철저한 자식교육으로 두들마을의 칠현자(七賢子)·칠산림(七山林)을 배출시킨 여걸이었다.

특히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초의 한글로 쓴 음식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은 당시 여인들의 삶을 가늠케 한다. 이 책 표지에는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이라 씌어 있다. 여성들의 길잡이인 셈. 70세가 지난 1670년경에 쓴 것으로 면병(麵餠)·어육·소과(蔬果)·술·초류 등 네가지로 나눠 146가지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선택'에서는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친정과 시어머님의 자상한 가르침에도 반가의 음식범절에 낭패를 보았다. 며느리와 딸들의 낭패를 덜어주고자 희미한 기억과 기력으로 써내려가 앞선 사람의 할일을 다한다"라 적고 있다.

정부인 장씨는 또 이 소설을 빌려 현대 여성들이 자칫 범할 수 있는 오류와 이기주의를 자신의 80살이를 통해 경계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성취란 말과 논의로 가정을 버리고 남편에게 벗어나 자식을 소홀히 하는 방종은 말라. 현모양처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이 허송세월을 뜻하는 것을 경계하라".

오늘도 두들의 여인들은 수백년 세월을 지나서도 음식과 예절, 자녀교육 등을 통해 모음살이의 지혜를 일러주는 정부인의 삶을 배우고 있다.

엄재진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