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활동에 공무원의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 어디서든 자금·기획력에 약점(?)을 가진 문화예술인은 관청과 유력자들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다. 프랑스 같은 문화강국에서는 공무원들이 예술을 선도하고 대중과 예술인과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예술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어떤가. 문화예술영역을 일반행정의 잣대로 재단하거나, 관료적인 뻣뻣함으로 일관하다가도 윗사람의 지시나 친분 앞에선 쉽게 융통성을 발휘한다. 공무원들이 실컷 고생을 하고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문화마인드가 부족하다.
문화예술인들이 공무원들에게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예술을 일반행정의 틀 속에 억지로 맞추려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예술행정 사업들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되거나, 공감대와 방향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이 문화예술을 끌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다. 대구시 장기발전계획의 일환으로 2008년까지 수성구 대흥동에 건설되는 시립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 한 미대 교수는 "공무원들이 유럽 미술관을 한번만 둘러봐도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무원들의 선진문화행정 교육기회 확대를 주장했다.
예술가와 시민을 위해 마련된 문화시설이 공무원들만의 편의에 따라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시에서 운영하는 전시·공연장에서 작업을 할라치면 퇴근 20, 30분전부터 관리자들의 독촉에 시달리기 일쑤다.
화가 ㄱ씨는 "시설 관리자들이 '전시는 못해도 좋으니 벽에 흠집내지는 마라'며 벽에 못 하나, 장식 하나 설치하는데도 이만저만 까탈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극단대표 ㄴ씨는 "비싼 돈을 들인 음향기기를 구입해놓고도 "손 잘못 대면 고장날 수 있다"며 쓰지 못하게 해 헌 음향기기를 쓴 적도 있다. 또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조명 담당자로 있다보니, 공연자들이 조명에 손조차 대지 못한 적도 있다"고.
▲여전한 관료적 자세
공무원들의 문화마인드 부족은 관료적인 행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공무원들이 돈줄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얻어쓰는 문화예술인은 자세를 더욱 낮출(?) 수밖에 없다. 음악인 ㄷ씨는 대관이나 문예진흥기금 등을 신청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대관도 힘들 뿐 아니라 100만원 남짓한 보조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보조금을 많이 받는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예술단체장이 교수라면 훨씬 대접을 받는다'는 푸념도 나온다. 한 문화예술인은 "교수가 아닌 화가·음악인의 경우 사소한 일 하나에도 오라가라식으로 불려다닐 경우가 잦고, 공무원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음악인 ㄹ씨는 "행사경비 지원요청을 하러가면 어떻게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규정에 맞지않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난색부터 짓는다. 어찌어찌해서 행사가 이루어질라치면 큰 선심을 쓰듯 한다"고 했다.
▨인맥과 지시에 좌우되는 예술행정
예술가들에게 공무원 사회의 턱은 아직도 높다. 공무원들이 문화에 대한 일관성이 부족하고, 장기적인 문화비전이 없는 탓에 인맥·혈연·청탁 등이 쉽사리 개입된다. 화가 ㅁ씨는 "연줄 없는 화가들이 대관 한번 잡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힘있는 혹자들은 무료로 대관을 받아내기도 하는 등 '혜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문화예술인은 "대형 조형물, 시립미술관 설계 등 큰 이권이 걸린 문화예술사업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공무원과 관련된 이들에게 낙찰되는 것을 여러차례 봤다"고 말했다.
대구시에서 주관하는 잡다한 추진위원회, 기획위원회 등도 문제. 중요 정책결정이 있을 때마다 문화예술계 전문가를 초빙, 전문성을 보충하자는 의도지만 사실 여론을 의식한 구색맞추기의 의도가 더 짙다. 안건에 대한 토론과 비판보다는 어느정도 정해진 정책을 적당히 추인해주는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한 위원회 관계자는 "'철없이' 딴죽을 울리는 참석자는 다음 위원 선임에서 제외되고, 대구시가 주최하는 각종 위원회에 더이상 초청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공무원은 "마인드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의 이해관계, 패거리의식 때문에 공무원들이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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