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 2002-대구의 미군부대

주한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이 반미감정에 불을 질렀다. 가해 미군 처벌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촉구하는 시위가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더니 급기야 대구의 초등학생들이 혈서를 쓰는 상황으로 치달았다.한국 사회 전반에 몰아닥친 반미감정의 물결속에 주한 미군부대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캠프 워커, 캠프 헨리 등 대구 소재 미군 부대는 그 외형적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을 준다. 여기에 여중생 사망 사건 무죄 평결 이후 항의시위가 확산되면서 미군 부대 주변엔 또 하나의 삼엄한 풍경이 생겼다. 방패와 진압봉으로 무장한 정사복 전투 경찰들이 24시간 경계 근무에 돌입한 것. 꼼짝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정복 경찰은 물론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부대 주변을 배회하는 청년들도 사실은 사복 전투경찰들이다.

지난 11월 24일부터 부대 주변 반미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배치된 병력이다. 2개 중대 200명 안팎. 전투경찰들의 의복에 부착된 무전기에서는 명령과 보고를 반복하는 무선 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춥죠. 엊그제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고생입니다". 경비 전경의 대꾸다.

"미군들이 다가와서 물어요.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부대 주변 경비가 늘었냐고. 웃기는 일이죠". 한 전투경찰은 밤새워가며 지키는데 정작 보호받는 미군들은 경찰이 배치된 이유조차 모른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입대 전 학창시절엔 한번도 시위에 참가해본 적이 없었지만 제대 후에는 반미 시위에 가담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낮춘다.

인근주민들의 감정도 한껏 고조돼 있다. "비행기 소리로 사람을 못살게 굴더니 이제는 아예 애들(여중생)을 죽이고도 말이 없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죄인은 없다". 동네슈퍼의 간이의자에 둘러앉은 50대 아저씨들은 소주잔을 나누며 한마디씩 했다.

"부대 주변 술집은 늘 바글바글 해요. 미국인도 있지만 한국 사람이 더 많아요. 무슨 즐거운 일이 그렇게 많은지…". 캠프 워크 인근의 한 주민은 여중생 사건이 불거지고 부대 앞에서 한차례 시위가 벌어진 후에도 미군들은 행동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눈치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인근 술집 주인은 "여중생 사건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어요"라고 말한다.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 직원은 입장이 다르다. "용산기지를 빼면 한국의 모든 미군 부대는 캠프예요. 말 그대로 임시 거처인 셈이죠. 미군들에게 한국은 전투지역입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미국이 밉지만 무작정 반미로 흘러서는 안되죠".

그는 주한 미군 중 가족을 데리고 오는 사람은 10%정도에 불과하다며 그만큼 미군들에게 한국은 위험지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미군 패밀리 라이프 센터 박재경 전도사도 "미군들에게 요구할 건 요구하되 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행사를 적극 개최해야 해요. 1년쯤 머물다가 떠나는 그들에게 한국을 잘 알리면 귀국 후 훌륭한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지 않겠어요". 그는 반미에만 목을 매달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도 신경을 쓰자고 제안했다.

2002년 12월, 대구 도심 가운데를 차지한 미군부대 외곽은 흐트러짐이 없다. 곳곳에 전투경찰들이 배치됐을 뿐 예전 그대로의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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