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지금의 국정원을 보는 시각은 여러갈래일 수 있다. 일반 국민들, 특히 윗사람에게 관운(官運)이 달린 공직자나 털면 언제나 먼지가 날 수있는 기업인들은 좀 더 달라서, 과거 안기부에 대한 깊은 속내는 '순(順)기능 보다는역(逆)기능 쪽'이었다. 그래서 언론정보든 기관정보든간에 정보란 '오뉴월 돼지고기' 같아서 잘먹어야 본전, 잘못 건드리면손해라는 것이 '정보' 근처에서 얼씬거리는 사람들의 아직까지의 생각이다.
그 '네거티브'한 대표적인 사례를 중소도시에서 찾자면 포항정도가 적합할 것이다. 지금은 그 '이미지'를 씻었지만 정경유착의 한 표본인 포항제철이 거기에 있고, 포철에 밥줄 달린 기업들, 그래서 정보에 갈증난 기업인들이 연줄찾아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여야 했던 90년대말까지 '정보의 바다' 포항은 한마디로 탁수(濁水), 흐린물이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안기부나 경찰의 '역할'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동향, 포철과 지역민과의 끊임없는갈등관계의 파악이라는 명분속에 경찰과 기관원들은 포철을 누비다시피 했으니, 그시절 책임자급 간부들은 '꿈같은 포항'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도청논란처럼 불법이 아니라 합법이었다.
이미 흘러간 필름의 하나를 한번 틀어보이는 까닭은 도청문제를 빌미삼아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이회창·노무현 두후보 진영의 무턱댄 '립서비스'가 우스워서가 그 하나요, 국정원도 이젠 젊은세대들을 중심으로 의식의 내부개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국민들이 느낀 '위압감'의 편린이나마 함께 들여다보아야 자위라도 될 것 같은 마음이 그 둘이다.
이제 '국정원개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만져보자.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이외엔 별 희망이 없어보인다. 야당탄압에 진저리를 쳤던 YS는 집권하면 정보기관의 국내정보·사찰활동을 근절시키겠다 해놓고 실천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보복에 써먹고 예산까지 빼썼다.안기부 최대의 피해자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굳은 초심(初心)은 역시 '정치적 용도'때문에 무너졌다.
국정원 고위간부들은 권력실세에 아부했고 '부패게이트'에 휘말렸다. 조직의 아랫도리는 '젊은피'로 바뀌는데 윗도리는 여전히 정치적 충성부대였고, 종국엔 야당에정보를 빼돌리는 배신까지 서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화장실에 갔다온 후'대통령의 생각이 달라진 때문이다. 안기부를, 국정원을 버리려니 너무도 아까웠다. 정치는 생각대로 되지않고, 악재(惡材)는 계속 터지고, 정치적 용도에 써먹기엔 정보기관이 '꿀단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국정원은 종국엔 꿀이 아니고 독(毒)이었다.
이 '독'을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는 해독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한쪽은 국정원 조직중 국내파트를 없애겠다 하고, 또 한 쪽은 국정원을 아예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이들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나면 국정원은 또 '꿀단지'로보이게 될 것이다. 당장, 대내(국내) 정보와 대외정보의 구분이 사실상 모호하다는 설득앞에 스르르 항복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정보기관을 개혁하길 원한다면 그 '기능'을 탓하기 전에 대통령이 그 정보를 정치에 악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국정원 간부들은 대통령의 '나쁜 속셈'에 영합하는 정보를 발전(發電)시키지 말아야 한다.
인사문제도 그렇다. 왜검사·장성 출신을 안기부에 집어넣어 국회의원으로 자꾸 만들어내는가? 천모·정모 의원 같은 이가 그 좋은 예다. 정보기관에 가면그 사람은 적어도 공직에선 정보기관으로 끝나야 한다. 이러니 홍모·이모 같은 '정치검사'들이 무슨 정해진 코스처럼국회의원을 '해먹지' 않는가.
국정원은 그래도 존재해야 하고 그 속에도 젊은 세대는 계속 불어난다. 다음 대통령은 국정원을 더 이상 국민앞에 부끄럽지 않게하는 길, 그것을 모색하기 바란다. 국정원 간부들도 "시간이 약"이라고 기다려선 안된다. 충성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강건태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