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간혹 차에 치어 죽은 개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운전자가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 개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경우 운전자는 죽은 개의 주인을 찾아 사과를 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5개월 전 친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길을 걷던 두 여중생이 54t이나 되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혐의로 미군 법정에 선 두 미군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졌다. 어린 두 학생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어느 누구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게 우리 국민은 개만도 못한 존재인가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지금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일고 있는 국민들의 요구는 단호하고 명확하다. 바로 무죄재판의 원천 무효, 사고를 낸 미군에 대한 한국법정 처벌, 부시대통령 공개 사과, 소파(한미행정협정) 개정이다.
우리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다 미국의 오만한 자세까지 겹쳐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격해지고, 나아가 반미 분위기마저 띠어가고 있다. 미국의 가시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한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무죄평결 규탄 및 소파 전면 개정을 위한 대구시 동성로 천막 농성장에는 연일 감동스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서명운동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한 푼 두 푼 낸 시민들의 성금이 하루 백 만원을 넘고 있다. 매일 오후 6시 촛불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 아주머니는 여중생들의 영정에 바쳐 달라며 하얀 꽃을 한 묶음 사줬고, 인근 식당 주인들은 농성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시끄러운 음향이 장사에 방해가 될 텐데도 싫은 내색을 하는 상인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시민들이 소파를 개정하라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시민들이 이렇게 하나된 마음으로 시민운동에 동참한 적은 없었다.
이번 주 토요일(14일)은 범국민 평화대행진의 날로 시위가 절정을 이룰 것이다. 동성로에서는 이날 오후 4시에 여중생 사망 책임자 처벌 및 소파 개정을 촉구하는 일만인 범시도민 평화대행진이 열린다. 평화로운 세상,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대구 시민이 함께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나라는 엄연한 자주국가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미군의 불법적인 행위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아들.딸들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음을 당해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속앓이 할 수만은 없다. 그 어느 강대국에도 업신여김을 당하고 짓밟힐 수는 없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우리 힘으로 지켜야 한다.
무릇 생명을 얻고자하는 자는 자기 생명을 버려야 한다고 했듯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두 여중생은 시민들의 가슴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고 있다. "미선이, 효순이는 갔지만 우리는 너희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동성로에 걸린 현수막 문구가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속을 파고 든다.
문창식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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