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四書)'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학문은 기초적인 데서 출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학을 상징하는 '상아탑'도 현실과 거리가 먼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학들은 그 모습을 잃은 채 응용학문이 주류를 이루고, 기초학문은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돈이 되는 학문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대학의 위상을 직업학교 정도로 인식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시장경제 논리가 확산되는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가의 기초학문의 외면과 취업 고시 학원화 현상은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다. 수강 신청엔 취업과 관련된 강좌에 집중되는 반면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강좌는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하는 사태가 비일비재라 한다. 대학 교육의 수요자들은자신의 역량이나 적성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데 얼마나 유리한가를 따지는 판이다. 고시 열풍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1995년까지 300명 선이던 사시(司試) 정원이 96년 500여명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까지 해마다 100여명씩 증가, 1천명 시대를맞으면서 대학가에 '사시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서울대의 경우 법대생과 비법대생 합격자 비율이 비슷하게 나오는 등 다른 전공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우려될 정도다.
최근 발표된 제44회 사시 2차 합격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333명이고, 이 중 156명(47%)이나 비법대 출신으로 2000년 37%, 지난해 42%보다 늘어난 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대학들도 사정이 비슷해 전공에 관계없이 시험을 거쳐 사시 준비생을 뽑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전공은 묻지마'식 고시 열풍이 날로 드세지고, 사회대·인문대는 물론 공대·자연대 등 이공계열 학생들의 '고시 휴학'까지 크게 늘어나는 등 상대적으로 기초학문 분야가 급격히 활기를 잃어 가는 '파행'으로 치닫는 추세다. 사시 필수과목 수강 신청에 비법대생들이 대거 몰려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란다.
현행 사시는 일단 합격만 하면 일거에 부(富)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신분 상승의 '현대판 과거제도'다. 하지만 이 나라의수재들이 막무가내로 뛰어드는 사시가 기회 균등인가, 나라를 망치는 재앙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수재들이 저마다판사·검사·변호사가 되겠다는 풍토는 분명히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국력의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될 기초학문의 보호와 활성화,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법조 인력의 충원 방식과 사시 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따라야만 하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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