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이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영화 '용서받지 못할 자(Unforgiven·1993년)'를 기억할 것이다. 한물간 총잡이가 현상금을 쫓는 과정을 박진감있게 그려 공전의 인기를 모았던 서부영화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과거 비행을 낱낱이 파헤친 책의 제목도 '용서받지 못할 자(시학사 펴냄)'다. 물론 원제는 'Fotunate son(복많은 아들)'이지만,'서부의 무법자'로 불리는 부시 대통령의 이미지를 빗대 국내 출판사가 제목을 바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고 세계정치를 힘만 앞세워 포악스럽게 운용해왔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제목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부시 대통령, 나아가 부시가(家)의 죄상을 하나 하나 열거한 '검찰 공소장'같은 느낌이 든다. △1972년 조지 부시가 불법 마약혐의로 체포된 바 있고 당시 하원의원인 아버지 부시가 텍사스 법원에 기록을 말소하도록 압력을 넣은 일 △자신이 소유주로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링턴 스타디움을 짓기 위해 악명높은 토지수용법을 만들어 수만 에이커의 개인 사유지를 강제로 압류한 일 △주식내부자 거래를 위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조성했던 일 △오사마 빈 라덴 일가와 관련된 BCCI스캔들 △텍사스 주지사 시절 부시와 그의 후원자들 사이에 오고간 은밀한 거래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시는 '악의 화신'이라 불리는 테러리스트보다 전혀 나을게 없는 상황인 셈이다. 미국언론들도 이를 추적하다가 일부분 사실로 밝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의혹만 키운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치평론가 J H 해트필드는 몇년간에 걸친 인터뷰와 자료조사 끝에 부시의 부도덕성을 철저하게 밝혀냈지만, 부시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9·11테러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시는 함량 미달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후광을 입고 출세한 악당'이라는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시 대통령이 철부지식 세계경영을 하고 있는 것도 성장과정과 가문의 환경, 비뚤어진 가치관 등에 기인한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용인하고 이권을 챙기는 미국 극우 보수층과 정서를 함께 하기 때문에 가능하겠지만….
미국 상류사회계층과 정치인들의 냄새나는 의식구조를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서점에 배포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부시의 소송 위협에 굴복한 출판사에 의해 회수됐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2001년 7월 자신의 고향 알칸사스의 한 여관방에서 숨진채 발견됐다는 점이 여운을 남긴다. 경찰은 사인을 자살이라고 결론지었지만 한동안 'CIA암살론'이 곳곳에서 유포됐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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